1. 개요
공학자는 효율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없다. 돈과 연관 짓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공학자라 할 수 없다.
군대를 다녀오고 공학 계열로 전공을 옮긴 뒤, 처음 수강했던 환경공학개론에서 들었던 이야기다.

정확히 어떤 문장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공학자는 경제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의 설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상당히 인상 깊었던 이야기였다.
과학자와 공학자의 차이를 생각하게 되었고, 이후 공학을 공부하면서도 종종 떠올리게 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공학자는 현실주의자가 되는 듯싶다.
아무리 훌륭한 기술이라도 현실적으로 구현할 수 없거나 경제적인 효용이 없다면 실제 사회에 적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의문이 든다. 기술적인 낭만이 없다면 어떻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증명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아직 불확실한 가능성을 보고 도전해야 한다.
기술의 발전은 결국 더 나은 효율과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이 아닐까?
그렇다면 공학자는 현실주의자인 동시에 어느 정도 낭만주의자여야 하는 것은 아닐까?
2. 본문
2.1. 공학자는 현실주의자인가?
공학이라는 학문은 현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과학이 자연현상과 원리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중점을 둔다면, 공학은 그러한 지식을 활용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 기술을 구현하는 데 중점을 둔다고 생각한다.
물론 과학과 공학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자도 실용적인 연구를 하고, 공학자도 새로운 원리를 탐구하기 때문이다.
다만 공학자가 다루는 문제에는 현실적인 제약이 더욱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기술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기술을 실제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더 적은 자원과 비용을 사용하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공학자는 효율을 고민해야 한다.
어떤 기술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자원은 얼마인지, 그것을 유지하는 데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드는지, 기존 기술보다 어떤 이점이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성능을 가진 기술이라도 그 성능을 얻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면 사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경제성만을 판단하면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안전성이나 신뢰성, 환경적인 영향 역시 공학자가 고려해야 하는 요소다. 때로는 당장의 비용을 더 지불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더욱 나은 결과를 얻는 선택이 있을 것이다.
결국 공학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단순히 비용을 줄이는 능력이 아니라, 여러 제약 속에서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환경공학개론에서 들었던 말도 이러한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다.
2.2. 공학자에게도 기술적 낭만은 필요하다
그렇다면 공학자는 경제성이 증명되지 않은 기술에 도전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아직 증명되지 않은 가능성에 도전하는 마음이 없다면 기술의 발전도 어려울 것이다.
새로운 기술을 처음 연구하는 시점에는 그 기술이 실제로 얼마나 효율적일지, 기존 기술을 대체할 수 있을지 확실하게 알기 어렵다.
개발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나타날 수도 있고, 기대했던 성능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가능성을 보고 연구를 시작한다.
나는 이러한 마음을 공학자의 기술적 낭만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낭만은 경제성을 무시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아직 경제성이 증명되지 않았지만, 기술을 발전시킨다면 경제성을 확보할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도전하는 마음에 가깝다.
지금은 기존 기술보다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새로운 재료를 개발하거나 생산 방법을 개선하면서 효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모든 도전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연구를 진행한 결과 기술적으로 구현하기 어렵거나 경제성을 확보하기 힘들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결과 역시 공학적인 판단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가능성을 검증하기 위해 도전하는 것과 경제적으로 불리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다른 이유로 계속 추진하는 것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공학자는 기술의 가능성을 검토하면서 현실적인 판단을 내려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낭만이 기술 개발을 시작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라면, 경제성은 그 기술이 현실에 자리 잡을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아닐까?
2.3. 공학적 효율은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는가?
그런데 공학자가 추구해야 하는 효율은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까?
우리는 가치 판단을 할 때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원래 작성했던 메모에서 떠올린 사례는 말라리아와 살충제 DDT의 문제였다.
말라리아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 지역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모기를 방제하기 위해 살충제를 사용하는 것은 감염병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DDT와 같은 물질은 환경에 오래 잔류하고 생물농축을 일으켜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문제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환경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이러한 살충제의 사용을 막는 것이 올바른 판단일까?
반대로 인간의 생명을 구한다는 이유만으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해도 되는 것일까?
이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물론 실제로는 DDT를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는 두 가지 선택지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방제 수단을 활용하거나 살충제 사용 범위를 제한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공학자는 각각의 방법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어떤 부작용이 발생하는지, 어느 정도의 비용이 필요한지 분석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분석을 마친 뒤에도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서로 다른 가치가 충돌할 때 우리는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가?
인간의 생명과 환경보호라는 가치를 단순히 하나의 숫자로 비교하기는 어렵다.
생태계를 보호하는 일 역시 장기적으로 인간의 삶과 연결되어 있으며, 당장 질병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의 문제도 외면할 수 없다.
공학자는 기술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그 효과와 위험을 검증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위험을 사회가 감수할 것인지, 어떤 가치를 우선할 것인지는 공학적 계산만으로 결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부분에서 공학은 사회적인 문제, 나아가 정치적인 문제와도 밀접하게 연결되는 것 같다.
2.4. 공학자의 판단과 정치인의 선택
나는 경제적으로 불리하다는 판단이 내려진 기술을 다른 목적을 위해 계속 추진하는 것은 공학적 판단이라기보다 정치적인 판단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경제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은 단순히 당장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기술의 발전 가능성과 장기적인 비용, 사회적인 효용 등을 충분히 검토한 뒤에도 경제적인 타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상황을 말한다.
그런데도 사회는 그러한 기술을 선택할 수 있다.
경제적인 효율 외에 환경보호나 국가안보, 인간의 생명과 같은 다른 가치를 중요하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결정이 반드시 잘못되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선택의 근거는 공학적인 효율만으로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점에서 정치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치는 미래를 예측하고,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답이 내려지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도 방향을 선택해야 하고, 그 선택의 결과가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공학자는 기술의 가능성과 한계를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인은 그러한 설명을 바탕으로 다른 가치들을 비교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물론 공학자도 윤리적인 판단을 해야 하고, 정치인도 경제적인 효율을 무시할 수는 없다.
두 역할을 완전히 분리할 수는 없겠지만, 최종적으로 어떤 판단을 내리고 책임지는가에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공학자는 기술적으로 가능한 미래를 제시하는 사람이고, 정치인은 사회가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지 고민하는 사람에 가까운 것 아닐까?
3. 마무리
공학자는 현실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현실적으로 구현할 수 없거나 경제적인 효용이 없다면 사회에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기술적 낭만까지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기술의 발전은 아직 증명되지 않은 가능성을 향한 도전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처음부터 성공과 경제성이 보장된 기술만 연구한다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낭만이라는 이유로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해서도 안 된다.
공학자의 낭만은 경제성을 무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 증명되지 않은 기술의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 가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공학자는 효율과 비용뿐만 아니라 안전과 환경,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다만 모든 문제의 답을 공학자가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DDT 사례처럼 서로 다른 가치가 충돌하는 상황에서는 기술적인 분석만으로 선택을 내리기 어려울 수 있다.
결국 사회가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지에 관한 판단이 필요해진다.
이러한 점에서 공학과 정치는 서로 다른 역할을 가지면서도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아닐까 싶다.
군 복무 이후 처음 들었던 환경공학개론의 이야기를 떠올려 본다.
공학자는 효율을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효율을 추구하는 것만으로 기술의 발전을 설명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아직 불확실한 가능성을 바라보고 새로운 기술에 도전해야 할 것이다.
나는 그러한 낭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가능성을 현실적인 가치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 공학자라고 생각하고 싶다.
기술에 대한 낭만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낭만이 현실에 자리 잡기 위해서는 결국 경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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