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쇼펜하우어와 니체 등 여러 철학자들은 인간의 삶에서 고통이 차지하는 역할에 관해 고민해 왔다.
삶은 고통이라는 말에 많은 사람이 공감할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다양한 고통을 경험하고, 살아가는 동안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과 공학을 공부해 온 나는 이러한 문제를 조금은 과학적인 관점에서 생각해 보고 싶었다.
과연 삶의 동기는 고통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이전에 작성했던 '[생각] 자유를 위한 자유 의지는 어디서 오는가?'라는 글에서 나는 인간의 뇌와 자유의지, 그리고 나라는 존재에 관해 고민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욕구와 연결해서 생각했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감정은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우리는 정말로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해 인간의 신체적인 조건과 환경, 경험과 기억이 욕구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또한 기억과 감각이 나라는 존재를 인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또 다른 의문이 생겼다.
만약 인간의 자유의지가 욕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면, 그 욕구 자체는 무엇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것일까?
우리는 왜 무언가를 원하고, 목표를 세우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일까?
이번에는 이전 글에서 다루었던 자유의지와 욕구에 관한 생각을 바탕으로 조금 더 근본적인 부분인 삶의 동기와 그 작동 원리에 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2. 본문
2.1. 자유의지는 욕구에서 오는가?
이전 글에서 나는 자유의지를 인간의 욕구와 연결해서 생각했다.
우리가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느끼는 감정은 자신의 신체적인 조건과 외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동일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사람마다 서로 다른 행동을 보이는 이유 역시 각자가 가진 신체적 특성과 과거에 경험한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커피를 마셨을 때 나타나는 신체 반응이나 맛에 대한 선호도가 사람마다 다르다면, 같은 커피를 마시더라도 서로 다른 감정과 욕구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은 기억으로 남아 이후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을 이어 가면서 나는 우리가 자유의지라고 부르는 것이 수많은 경험과 감각, 기억과 환경의 영향으로 형성된 행동의 경향성일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가졌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했다고 느끼지만, 그러한 결정 역시 이미 형성된 뇌의 구조와 외부 자극에 의해 발생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이것만으로 자유의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당시에는 인간이 스스로의 의지라고 느끼는 감정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궁금했다.
또한 내가 나라는 존재를 인식하는 데 기억과 감각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기억이 사라지거나 모든 감각이 단절된 상황에서 나라는 존재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지 고민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죽음과 사후세계에 관해서도 나름의 생각을 정리했다.
당시에는 감각과 기억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주관적인 경험 역시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사후세계의 존재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도 기억과 감각이 자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는 생각에는 큰 변화가 없다.
다만 이러한 생각만으로 의식의 본질이나 사후세계의 존재 여부까지 확정할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러한 문제를 다시 논의하기보다 이전 글에서 남겨 두었던 질문을 이어 가고 싶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욕구와 연결되어 있다면, 그 욕구를 발생시키는 가장 근본적인 조건은 무엇인가?
나는 이 질문을 생각하면서 결핍이라는 개념에 주목하게 되었다.
2.2. 삶의 동기는 고통인가, 결핍인가?
삶이 고통이라는 주장에 관해서 나는 조금은 관망적인 입장이다.
삶의 모든 순간이 고통스럽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 만족하거나 평온한 상태를 경험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고통이라는 단어만으로 인간의 모든 행동과 삶의 동기를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고통보다 조금 더 넓은 개념인 '결핍'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다.
여기에서 말하는 결핍은 단순히 무언가가 부족해서 괴로운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무언가가 충족되지 않은 상황까지 포함하고 싶다.
배가 고픈 사람은 음식을 필요로 하고, 추위를 느끼는 사람은 체온을 유지할 방법을 찾는다.
이러한 결핍은 고통을 동반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결핍이 반드시 고통으로 인식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싶거나 더 나은 기술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 역시 현재 알고 있거나 할 수 있는 것과 앞으로 도달하고 싶은 상태 사이의 차이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차이를 인식하는 것 역시 결핍의 한 형태가 아닐까?
나는 이 결핍이라는 개념을 이용한다면 의식적인 고통을 느끼는 인간뿐 아니라, 의식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생명체의 행동까지 조금 더 넓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핍은 목적을 만들고, 목적은 행동을 만들어 낸다.
이것이 현재 내가 삶의 동기를 이해하기 위해 세운 가장 기본적인 가설이다.
2.3. 생명은 결핍에 대응하며 존재한다
그렇다면 조금 더 근본적인 부분부터 생각해 보자.
인간이 자아를 형성하기 이전, 세포 단위의 생명활동에서도 결핍이라는 개념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생명체는 자신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에너지와 물질을 필요로 한다.
우리 몸의 세포는 ATP라는 물질을 이용해 다양한 생명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받는다.
ATP는 사용되면서 다른 형태로 전환되고, 생명활동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다시 ATP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인간은 발생 초기부터 외부에서 공급되는 영양분과 에너지에 의존하며 성장하고, 태어난 이후에도 음식과 산소 등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아야 한다.
이는 생명체가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조차 끊임없는 활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생리학에서는 체온이나 혈당, 수분 등 내부 환경을 일정한 범위로 유지하려는 조절 과정을 항상성이라고 설명한다.
나는 이러한 항상성의 유지 과정에서도 결핍에 대응하는 생명체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명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현재의 상태를 영원히 유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에너지는 소비되고, 물질은 교환되며, 외부 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면서 자신의 생명활동을 유지한다.
그렇다면 삶의 가장 기본적인 동기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발생하는 끊임없는 필요와 불균형에 대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세포가 인간처럼 결핍을 느끼거나 목적을 의식한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세포의 반응은 생화학적 조절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고, 인간이 느끼는 욕구나 감정과는 구분해야 할 것이다.
다만 생명체의 행동을 더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면,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거나 변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조건에 반응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4. 경험과 기억은 새로운 결핍을 만든다
인간의 자아가 형성된 이후에는 상황이 조금 더 복잡해진다.
우리는 단순히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 것만을 목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하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싶어 하며, 이전보다 나은 생활을 추구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욕구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나는 경험과 기억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이전 글에서도 인간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대상을 구체적으로 원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언급한 적이 있다.
여기에서 케이크에 관한 사례를 생각해 보자.
케이크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는 원시인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사람은 배고픔을 느끼고 단맛을 좋아할 수는 있겠지만,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케이크라는 특정한 음식을 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케이크를 처음 경험한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그 맛과 향, 먹었을 때의 만족감을 기억하게 되고 다시 케이크를 먹고 싶다는 욕구를 가질 수 있다.

이처럼 경험과 기억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욕구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배고픔이나 단맛에 대한 선호와 같은 기본적인 반응까지 모두 경험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신체적인 조건과 생물학적인 조절 과정은 인간의 욕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다만 우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해서는 경험과 기억이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싶은 마음도 비슷하지 않을까?
인간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아직 알지 못하는 영역을 발견한다.
그리고 자신이 모르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것을 알고 싶다는 욕구를 가질 수 있다.
물론 인간은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나 상상을 통해 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상상 역시 이전에 얻었던 감각과 기억을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새로운 것을 원한다는 사실은 반드시 과거에 같은 대상을 경험했다는 의미라기보다, 과거의 경험과 기억이 새로운 욕구를 형성하는 재료가 된다는 의미에 가까울 것이다.
결국 인간은 경험을 통해 새로운 대상을 알게 되고, 현재의 자신과 기억 속의 경험 또는 상상하는 미래를 비교하면서 새로운 결핍을 만들어 낸다.
결핍은 욕구와 행동을 만들고, 행동을 통해 새로운 경험이 쌓이며, 그 경험은 다시 새로운 결핍을 만들어 낸다.
어찌 보면 인간의 욕구는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면서 계속해서 확대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전에 만족했던 삶이 어느 순간 부족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2.5. 결핍은 발전과 성장을 만드는가?
결핍이 욕구를 만들고 욕구가 행동을 만들어 낸다면, 우리는 그 행동을 통해 무엇을 얻게 되는 것일까?
인간은 자신의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 행동한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찾고, 추우면 몸을 따뜻하게 만들 방법을 찾는다.
더 빠르게 이동하고 싶다는 욕구는 새로운 이동 수단을 개발하는 동기가 될 수 있고,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는 욕구는 학문과 기술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인간의 발전과 성장 역시 결핍을 해소하기 위한 행동의 결과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결핍을 해소하기 위한 행동이 반드시 발전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해로운 행동을 하거나, 당장의 만족을 얻기 위해 장기적인 손해를 감수할 수도 있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퇴보하거나 자신의 삶을 악화시키는 행동일지라도, 그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자신이 느끼는 결핍을 해소하려는 시도일 수 있다.
그렇다고 그러한 행동이 항상 합리적이거나 정당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행동의 동기와 그 행동이 실제로 만들어 내는 결과를 구분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원래 결핍을 해소하는 것을 발전이라 부르고, 결핍을 악화시키는 것을 퇴보라고 생각했다.
다만 생각을 이어 가다 보니 결핍의 해소와 발전을 완전히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기는 어렵다는 점도 느끼게 된다.
어떤 행동은 당장의 결핍을 해소하지만 미래에 더 큰 결핍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핍은 발전과 성장의 동기가 될 수 있지만, 그 결과를 반드시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결핍은 우리를 행동하게 만드는 원인 가운데 하나이며, 그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는 또 다른 문제일 것이다.
2.6. 행복과 안정감은 어떻게 다른가?
결핍과 행동의 관계를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행복에 관해서도 고민하게 된다.
나는 행복이라는 감정의 상당 부분이 결핍이 해소되는 순간에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배고픔을 느끼던 사람이 음식을 먹거나,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풀었을 때 느끼는 만족감이 그러하다.
원하던 것을 얻고 목표를 달성하는 순간, 우리는 결핍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느끼며 행복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모든 행복이 결핍의 해소만으로 설명된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특별한 부족함을 인식하지 않더라도 즐거운 경험이나 타인과의 관계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다만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현재의 상태와 원하는 상태 사이의 차이가 줄어들 때 발생하는 만족감이다.
그렇다면 안정감은 무엇일까?
나는 안정감을 결핍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결핍이 계속해서 발생하더라도 그것을 해결할 능력과 방법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는 상태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도 앞으로 생활비가 필요하고 예상하지 못한 지출을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지출을 감당할 수 있는 소득과 자산,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상대적으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지금 당장은 생활에 문제가 없더라도 미래에 필요한 것을 마련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불안을 느낄 수 있겠지.
따라서 행복이 결핍의 해소 과정에서 발생하는 긍정적인 감정에 가깝다면, 안정감은 앞으로 발생할 결핍을 감당할 수 있다는 믿음과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인간은 결핍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더라도 그 결핍에 대응할 능력을 갖추면서 안정적인 삶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2.7. 우주는 왜 끊임없이 새로운 결핍을 만드는가?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인간이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 행동한다면, 왜 결핍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나는 이 질문을 생각하다가 다시 자연현상과 우주의 변화에 관해 고민하게 되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정지되어 있지 않다.
에너지는 여러 형태로 전환되고, 물질은 이동하며, 외부 환경은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고립계의 엔트로피는 감소하지 않는 방향으로 변화한다.
생명체는 이러한 자연법칙에서 벗어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외부로부터 에너지와 물질을 공급받고 열과 폐기물을 배출하면서 자신의 내부 상태를 유지하는 존재다.
나는 이 부분에서 생명체가 자연적인 변화에 대응하며 국소적으로 질서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모습에 주목하게 되었다.
우리는 자신의 몸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에너지를 소비하며, 외부 환경의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건강한 상태가 영원히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생명체는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발생하는 불균형에 대응하도록 만들어진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우주의 엔트로피 증가가 인간의 모든 심리적인 결핍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주장이 아니다.
엔트로피와 생명 유지 사이의 관계를 인간의 욕구와 삶의 동기로 연결하는 것은 현재 내가 생각하고 있는 하나의 철학적인 가설에 가깝다.
하지만 생명체가 자연의 변화 속에서 자신의 상태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은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기억과 경험을 통해 새롭게 형성되는 욕구까지 더해진다면, 인간의 결핍은 더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우리는 자연적인 변화에 대응하면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고, 동시에 새로운 경험을 통해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목표를 추구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결핍을 완전히 없애는 과정이라기보다 끊임없이 발생하는 결핍에 대응하는 과정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3. 마무리
삶은 고통이라는 말에서 출발해 인간의 행동과 삶의 동기에 관해 생각해 보았다.
이전에 작성했던 '[생각] 자유를 위한 자유 의지는 어디서 오는가?'에서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욕구와 연결해서 생각했다.
당시에는 인간의 신체적인 조건과 환경, 그리고 기억과 경험이 욕구와 행동을 형성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욕구 자체가 어디에서 발생하는지 한 걸음 더 생각해 보고 싶었다.
나는 삶의 모든 순간을 고통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무언가를 필요로 하고, 그것을 충족하기 위해 행동한다는 점에는 주목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고통보다 더 넓은 개념인 결핍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보았다.
생명체는 자신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외부에서 에너지와 물질을 공급받아야 한다.
인간은 그 위에 기억과 경험을 쌓아 가면서 새로운 욕구와 목표를 만들어 낸다.
그렇게 발생한 결핍은 행동의 동기가 될 수 있고, 그 행동은 새로운 경험과 결과를 낳는다.
때로는 발전과 성장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퇴보하거나 더 큰 결핍을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 과정에서 결핍이 해소되는 순간에 느끼는 감정의 상당 부분을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결핍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더라도 앞으로 발생할 문제를 해결할 능력과 방법을 알고 있다면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을 이어 가다 보니 인간의 삶은 단순히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과정만은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우리는 자연환경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조건에 대응하며 존재하고, 기억과 경험을 통해 새로운 욕구를 만들어 내면서 행동한다.
그러한 행동이 우리가 삶을 이어 가고 발전해 나가는 동기의 한 부분이 아닐까?
물론 결핍이라는 하나의 개념만으로 인간의 모든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특히 인간의 자유의지와 감정, 의식에 관한 문제는 아직 답을 내리지 못한 부분이 많다.
또한 생명체의 에너지 조절과 인간의 심리적인 욕구를 하나의 원리로 연결하는 것이 얼마나 타당한지도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지금의 나는 삶의 동기가 결핍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결핍은 욕구와 목적을 만들고, 목적은 행동을 만들어 내며, 행동은 다시 새로운 경험과 결핍을 만들어 낸다.
어쩌면 우리는 결핍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발생하는 결핍에 대응하면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이전에 작성했던 글과 이번 글이 모두 완성된 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과거에는 자유의지와 욕구의 관계를 궁금해했다면, 지금은 그러한 욕구를 일으키는 조건과 그 과정에서 인간의 삶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앞으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한다면 이러한 생각도 다시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삶의 동기가 어디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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