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동과 불로소득’ 개요
일단 시작에 앞서 평범한 한 개인의 글임을 알아 주셨으면 한다. 이 글을 읽고 개인의 생각을 더욱 발전 시켰으면 하는 바램이다. 미래에는 나 자신의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 이를 숙지해 주시길 바란다. 시작해 보겠다.
대학생이 되었을 당시 주식을 시작하면서 경제에 관해서 이것저것 공부하며 투자에 관해서 공부하였다. 주식뿐만 아니라 부동산에 관해서도 부동산 경매에 흥미를 느껴서 약간의 공부를 했었다.
나름 이자 소득이나 자산 거래 차익에 관해 관심이 많았던 까닭에 필자는 이러한 수익 수단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거래를 통해서 나름 고통 받는 이들을 지원해주고 그에 대한 대가를 정당하게 받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에 이러한 이자 소득이나 자산 거래 차익에 관해서 너무나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 주려고 한다. 이러한 소득이 정당하지 않는 것이라 매도하는 정치적 발언에 관해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것에는 빛과 그늘이 있음에도 말이다.
그리고 과연 이자소득, 자산거래 차익이 한국에서는 불로소득이라 불리며 이러한 소득이 힘도 안드리고 손쉽게 돈을 버는 것으로 매도 당하는 것이 올바른 표현과 통찰이 아니라고 생각되어 글을 작성해 보고자 한다.
또한 불로소득이라는 단어 앞서서 정말로 노동이라는 것이 무엇이며 이자소득과 자산거래 차익을 보는 것이 힘도 들이지 않고 흔히 노동을 하지 않고 벌어들이는 손쉬운 돈벌이라는 견해에 관해서 반론을 담아 보고자 한다. 또한 필자가 생각하는 노동에 관해서 정리해 보고자 한다.
2. ‘노동과 불로소득’ 본문
2.1. 노동과 불로소득의 사전적 의미
네이버 사전을 통해서 노동과 불로소득이 단어를 검색하면 아래와 같이 나온다.
2.1.1. 노동( 勞動)
명사
1.몸을 움직여 일을 함.
2.(경제)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
2.1.2. 불로소득(不勞所得)
1. 경제 직접 일을 하지 아니하고 얻는 수익. 이자, 배당금, 지대(地代) 따위를 통틀어 이른다.
표준국어대사전
나는 노동의 사전적 풀이에서 ‘물자를 얻기 위하여’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물자를 얻기 위함은 돈을 포함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즉, 나는 이윤을 추구하는 모든 행위나 생각이 노동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미 사전적 정의 상 육체적 노력뿐만 아니라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를 노동이라고 하였다.
다만 이윤을 추구하는 모든 행위가 노동이라고 한다면 심지어 사기와 절도 행위도 노동이 되는데 나는 이러한 것도 문제가 없고 심부름으로 용돈을 받는 행위도 노동이 되며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노동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싶다.
다만 사기 행위와 절도 행위는 금지되는 노동 행위인 것이다. 심부름의 경우에는 국가 단위에서 측정 되기 힘들 뿐이다.
2.2. 노동의 모호함과 소비, 행위자와 시간 그리고 감정
이윤 추구라 함은 손실을 줄일려는 행위도 포함한다. 이윤추구가 아닌 감정만 추구하게 된다면 이는 소비인 것이다. 보이기에 따라선 외부에서는 소비로 보이지만 행위 주체로서는 노동일 수도 있다. 즉, 돈 소비를 하더라도 그것을 토대로 이윤을 추구한다면 이는 노동이 될 수 있다.
소비라는 것은 이윤추구 행위가 포함되지 않은 행위이며 그 끝을 감정으로만 끝내는 행위로 보인다. 또한 이윤추구와 감정 추구가 동시에도 이뤄질 수 있기에 노동 행위 규정에 모호성을 더한다.
그럼에도 소비는 이윤추구가 결여된 감정적 효용감만을 추구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흔히들 말하는 집안일이라고 하는 것은 필자의 의견으로는 소비 행위로 해석될 여지가 큰 것이다.
소비라는 감정적 효용만 추구하는 행위는 좋은 감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쁜 감정도 포함한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이 이런 해석의 문제점은 시기의 범위에 따라 모든 소비 행위가 주체자에 의해서는 모두 이윤추구 행위일 수 있고 노동일 수 있다는 점이다.
행위의 목적은 결국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이 이러한 해석의 문제이다.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회에서 납득할 만한 범위에서 그 노동의 영역이 정해진다는 소리이다.
사회에서는 현실적으로 흑자를 보는 이윤추구 행위 위주로 노동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다. 또한 사업자 등록을 통해 그 의도를 객관적으로 수집하는 것이다. 나는 사업도 넓은 의미로 노동으로 보인다.
2.3. 소득과 노동
소득 원천에 따라서 우리는 근로소득, 사업소득, 금융소득 등으로 나눈다. 위의 해석에 의해서는 셋 전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기에 모두 노동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금융소득과 몇몇 사업 소득을 불로소득이라 부른다.
금융소득과 부동산 임대 사업으로 대표되는 몇몇 사업 소득에 관해서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은 부당한 소득이라는 분위기를 만든다. 엄연히 정신적 노력이 들어간 노동인데도 말이다. 또한 육체적 노력이 들어가기도 한다.
실체가 있는 생산물을 만들지 않는 서비스직 종사자와 정치 행위, 사무직도 노동이라 부른다면 비슷하게 정신적 노력을 투입하는 행위로 금융소득과 사업소득도 노동으로 취급해야 할 것이다. 금융 소득을 올리고 부동산 임대 사업 소득을 올리는 사업가와 자본가의 노력을 불로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아 보인다.
2.4. 과학에서의 일
번외로 보다 넓은 영역으로 노동을 과학에서의 일로 영역으로 해석해 보자. 과학적인 영역으로 가자면 에너지를 전환하는 행위를 일을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최근에 전기차와 배터리가 상용화 되면서 어려 영역에서 점차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로서는 전기 단위로 생각하고 있지만 전기 용량의 단위는 엄연히 에너지 단위이며 이는 일 단위로 환산 될 수 있다. 로봇이 일상화된 미래에서는 노동력을 기준 로봇에 관한 에너지 단위와 그 효율로 표시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1인 로봇 시대가 되어서는 과학과 공학에서 사용되는 객관적인 일 단위가 점점 쓰임이 많아 질 수도 있을 것 같다.
2.5. 이자와 임대 사업이 불로소득?
불로소득은 무엇인가? 존재하는 것인가? 나는 불로소득을 운운하면서 자산거래 차익 또는 이자소득을 환수라는 나름 점잖은 언어로 말하지만 본질은 가진 사람들에게서 자유를 뺏어와야 한다는 소리가 너무나 불합리해 보인다.
세상에 노동이 없는 진짜 불로소득이 있단 말인가? 흔히들 불로소득이라고 말하는 것들은 너무나도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노동을 하지 않고 이익을 얻는 행위로 받아 들여지고 힘을 쓰지 않고 손쉽게 이익을 취하는 것으로 비춰진다. 현대 사회에서 노동은 앞서 언급했듯이 이윤추구 행위이다.
몇몇 정치인들이 금융소득을 불로소득이라고 말하며 노동이 들어가 있지 않은 것처럼 언급한다. 하지만 앞서 소득과 노동에서 언급했듯이 사실이 아니다. 왜이리 부정적인 의미가 한국 사회에서 널리 퍼진지 의문이지만(뭐 심증은 간다.)
금융소득을 얻기 위해서는 정신적 노력이 들어가야 한다. 심지어 육체적 노력도 들어가는게 금융소득을 얻기 위해서 필요하다. 또한 금융소득을 얻기 위해서는 원천이 되는 돈이 필요하며 이는 사업소득과 근로소득의 축적이 이뤄져야 한다.
물론 증여나 상속으로 받았더라도 이는 자본을 사용할 자유를 미래에 미뤄야 하는 인내를 필요로 한다. 흔히들 부동산과 주식 투자로 돈을 버는 것이 쉽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잘못되었다.
이는 현대 국가가 되었기에 안정되 쉽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 과거 비참한 근로 여건과 신용이 부재와 같이 절대로 쉬웠던 일이 아니다. 몰론 지금도 쉬운일이 아니다.
선택에 놓이며 그 돈을 전부 잃을 수 있는 위험에도 놓인다. 그 자산이 고정되어 있는 동안 그 인내의 필요성이 정신과 육체를 갈아 먹는 노동이 근로 소득 만큼 필요한 것이다. 정당한 자본가와 사업가를 욕보이는 것은 개미와 배짱이 이야기에서 개미를 욕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2.6. 이자에 관한 시각
이자로 이윤을 추구하는 투자 수익은 정신적 노력이 들어간 노동이다. 이를 노동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면 모든 사무직은 노동이 아니다. 정치인들도 돈을 받으면 안되는 것이다. 미래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세상에는 발전이 없을 것이다. 이자 소득이 없다는 말은 현재보다 미래의 발전이 없다는 의미이다. 쌓아온 가치가 축소한다는 의미이다.
사회가 쇠퇴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이다. 이는 발전 의지가 없어서 사회가 쇠퇴하는게 아니라 쇠퇴하는 사회이기에 이자 소득이 적은 것이다. 이전 글들에서 가치있는 돈은 힘을 지니며 이는 자유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즉, 돈의 양은 행복보다 아니라 자유의 양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자 소득이 불로소득라는 것은 당신이 미래의 발전을 위해서 인내라는 미루는 행위 즉, 자기 자신에 가하는 자유의 통제가 가치가 없다고 하는 것과 같다.
한편 경제 위기에 이자율이 높아지는 것에 그 상황이 사회가 발전하는 것이냐고 반문한다면 경제 위기의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한 높은 이자율 책정은 경제 위기 현재 상황보다 미래가 더 좋아 질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된 것임으로 앞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흔히들 말하는 금융소득의 원천은 현재를 더 가치있게 만들려는 사람을 위해서 자본가가 자신의 가지고 있는 자유를 그들에게 나누워 주는 행위이다. 스스로가 가진 자유를 제한 하는 것에 가치가 없다면 인간의 존재에도 가치가 없다는 것과 같다.
2.7. 부동산 임대사업과 시세차익에 관한 시각
부동산 임대사업과 시세차익이 불로소득인가도 논란이다. 부동산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량의 유지비가 들어가고 정신적 노력과 육체적 노력이 소비된다. 부동산 시세차익이 부당하다면 당신의 능력에 따른 임금 격차도 부당한 것이다.
투입된 노력에 비해서 많은 돈을 벌고 있으므로 불로소득이라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다. 그들의 자산 가치(자유)를 폄훼하는 발상이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리스크를 배제한 생각이다. 세상에 노동이 들어가지 않는 소득은 없다.
쉬운 소득이라고 불리는 것 또한 리스크를 짊어진 것이다. 몇몇의 정신적 노력을 하지 않은 운 좋은 이들을 예시로 분명히 정신적 노력을 투입한 투자가를 폄훼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본가가 없다면 또한 사업가가 없다면 시장은 존재하지 않았다. 노동자가 사업자가 되고 사업자가 자본가가 되었기에 더 높은 소득이 창출되었으며 이는 반대가 아니다. 그들이 말하는 불로소득이 없다면 사업가는 존재하기 힘들고 이에 따라 사업가가 존재하지 않는 만큼 노동자도 존재 할 수 없는 것이다.
부동산 시세차익이 대표적으로 불로소득으로 보이지만 나는 주택 및 부동산 매매는 꽤나 어려운 일이며 기간이 길고 생산에 어려움과 공급의 부족이 있기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본다. 시세차익 얻는 행위는 짧은 기간으로 사업이 진행될 수 있으면 유통업과 별반 차이가 없는 행위이다.
2.8. 불로소득 환수에 관한 비판
금융소득에 이윤과 가치가 있으면 안되고 환수 해야 된다는 소리는 스스로가 행하는 통제와 자기 절제 인내에 가치가 없다는 의미와 같다. 좋게 말하면 미래의 가치보다 현재의 가치가 더 소중하는 의미이다. 미래와 현재와의 싸움인 것이다.
금융소득을 환수 하겠다는 주장하는 이와 그의 반대자의 싸움은 자유와 통제의 싸움이고 미래와 현재의 싸움이며 이는 개인과 사회의 싸움으로 보여진다.
과장된 해석일 수 있으나 금융소득은 노동이 아니며 노동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의 발전과 사회의 발전에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금융소득이 아니라 금융소득이 없거나 금융소득이 아닌 금융손해를 보는 세계는 발전이 없는 자유의 퇴보를 간접적으로 보이는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이자가 없는 국가들은 그 사회 자체가 퇴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형적인 국가로 일본이 있다. 과거의 생산해둔 자산의 가치가 축소하며 새로운 것들이 생기지 않는 사회라고도 말할 수 있다. 좋게 말하면 욕심이 적은 사회이고 안정을 추구하는 사회이다.
또한 이러한 불로소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금융소득의 축소의 영향은 동등하게 노동의 가치도 축소되게 만든다.
불로소득을 환수 하겠다는 이들이 목적이 양극화 축소에 있는 것은 알겠으나 그러한 행위가 지나치게 되면 이는 곧 사회 발전을 저해하게 될 것이다. 사업가와 자본가가 돈을 많이 가지게된 이유가 사기와 절도가 아니였다면 이들이 가진 많은 이익은 사회에 더 많은 이로움을 가져다준 보상이다.
이들이 얻은 사회에서의 성공은 이들이 앞으로도 사회에 더 높은 효율을 가져다 줄 것을 간접적으로 지원하게 되는 자연의 시스템이며 자본주의이다.
흔히들 사회주의 정치인들이 말하는 불로소득 환수로 양극화를 해소하자는 밝은 면과 반대되는 어두운 면은 사회의 이로운 공을 세운 자본가와 사업가의 자유 축소와 통제이다. 이는 사회 구성원들의 유기적인 연결 특성상 시간차로 노동자의 자유 축소와 통제로도 이어진다. 사회 통제의 낙수 효과인 셈이다.
세상에 불로인 소득은 없다. 흔히들 불로소득이라고 하는 금융소득이라는 것은 미래의 노동에 대한 지불로 소득을 얻는 것이다. 또한 노동에 의해서 축적된 가치로 소득을 얻어 내는 것이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이들의 꿈들과 생산성이 그들에게 흘러 들어가는 것이다. 그들의 인내에 대한 보상인 것이다.
3. ‘노동과 불로소득’ 마무리
불로소득이라는 금융소득은 더나은 미래를 꿈꾼 이들이 지원에 감사를 보상을 받거나 주는 것이다. 잘못된 투자나 임대사업은 오히려 손해와 손실을 가진다. 이들은 그렇다면 불로손실을 본 것인가? 이들은 불로손해를 본것인가?
불로소득이라 이익을 환수하겠다는 것이 옳다고 한다면 우리들이 노동으로 받은 임금도 기준 임금 이상을 받을 경우 환수 해야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미 우리는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설득 되었고 고연봉에 근로소득자들의 소득이 환수되고 있다.
이미 국가라는 시스템은 상당량 국민들의 발전과 자유를 착취하고 있다. 이를 당연히 생각하는 사회가 만연하고 있다. 물론 착취라는 부정적인 표현을 썼지만 국가가 걷은 세금이 본연의 국가 목적인 안보와 국방에 문제 없이 쓰인다면 괜찮다. 중요한 것은 역시나 사회적 합의이다.
그럼에도 최근까지 높아지는 정부 지원금인 세금 상승은 개인이 자유를 쌓는 일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집 값이 오르게되면 주택 건설 이후 얻을 수 있는 사업 소득도 높아지기에 앞다퉈서 건물이 지어져야 하지만 현실은 각종 규제에 규제 회피에 들어가는 비용도 추가되어서 리스크를 안고 주택을 짖는 이들이 나오지 않고 있다.
부동산 임대업이 악하다는 것은 사업가들이 악하다는 것을 돌려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전에 썼던 ‘[생각] 기업의 목적인 이윤 추구가 부정한가?‘에서 언급했듯이 이는 명백히 잘못이다.
결국 나의 생각으로는 노동이 들어가지 않는 소득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노동이 들어가지 않는 곳에는 퇴보 밖에 없고 이는 불로에는 손해와 손실만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또한 엄연히 금융소득과 부동산 임대업과 거래 차익에는 엄연히 노동이 녹아 들어가 있으며 그 노동은 미래에 대한 노동과 더 큰 가치를 가져 오리라 믿는 현재의 노동이 녹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단연코 적절한 발전을 유도하는 법적 체계가 잡혀 있는 국가에서 금융소득과 부동산 임대업 등과 같은 사업소득은 노동이 들어가지 않은 불로소득이 아님을 말하고 싶다.
지금까지 어리숙한 생각을 읽어주어서 고맙다. 당신의 앞길에 행운이 있기를 바란다. 이상이다.
P.S. 글을 간단하게 쓸려고 했는데 반복하는 내용이 많았고 조금은 난잡한 글이 되었다. 가벼운 글로 적은 단락을 지닌 글로 쓰고자 하는데 쓰면서 생각이 많아 져서 그런것 같다. 메모장에는 많은 소재들이 쌓여 있는데 조금은 어리숙하고 글로 쓰기는 조금은 양이 적은거 같아서 못 올리는 글이 많다. 짧은 글을 쓰는 것도 생각해 보고 있지만 쉽지는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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