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며 이 글이 당신의 생각을 보다 넓히는데 기여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나 양해 부탁 드립니다.
1. ‘양극화와 사회문제’ 개요
사회 문제를 이야기 하면서 많이 등장하는 단어로 양극화가 있다. 그리고 양극화가 사회문제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양극화는 사회문제의 직접적 원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번글은 왜 내가 그러한 생각을 갖게 된 것인지 풀이를 해보겠다.
2. ‘양극화와 사회문제’ 본문
2.1. 양극화가 문제? 스타들의 수십억이 아닌 당신의 1000만원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보기에 양극화는 사회문제에 의해서 만들어진 결과라는 측면이 더 크게 다가온다. 또한 양극화는 사회문제로 인해 쟁점화 되었다는 측면이 보인다. 즉, 근원은 사회문제가 우선되고 양극화가 문제로 대두가 되는 것이다.
물론 양극화가 되먹임(feedback)으로 추가적인 사회문제를 발생시키는 측면이 보인다. 즉, 양극화는 사회문제를 더 심하게 만드는 촉매 역할을 하는 것은 맞아 보인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양극화는 그 자체로는 사회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극도로 양극화가 심했던 시기는 이미 과거에 있었다. 왕권 국가들이 예이다. 내가 보기에 본질은 양극단에서 하위에 있는 이들이 더 넓게는 하위권과 중위권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이전의 전반적인 상태보다 더 내려왔다는 것이 사회문제로 대두 되는게 맞다.
즉, 사회의 과실을 상위권이 더 차지하는 것까지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하위 권의 과실이 이전보다 줄어든다면 이는 문제가 된다.
이전에 차별에서 이야기에서도 이야기 된 것 처럼 모든 사회의 문제의 근원은 퇴보이다. 여기서 말하는 퇴보란 하위권이 갖는 위치(돈, 지위, 힘)가 낮아지는 것이다. 기회가 적고 성장이 제한되는 상황을 뜻한다.
2.2. 양극화를 줄이는게 사회문제를 해결하는게 아니다.
앞선 언급처럼 상위권의 경제 과실이 늘지만 하위권의 과실은 줄어드는 것뿐만 아니라 양극화가 문제되는 시점에서는 상위권에 위치한 이들도 그 위치가 하방을 향하기 마련이다.
즉, 말하고자 하고픈 바는 양극화가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 그 방향이 아래로 향했다는 것이 본질적인 문제라는 점이다. 물론 사족을 더하면 상위권에 위치한 이들이 스스로를 계급화 하는 점은 문제일 수 있다.
우리가 양극단의 상단에 위치한 사람에게 비판할 때 주의할 점은 상단에 위치한 이들이 더 많이 가지고 있는게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힘을 지니고 있음에도 전체의 방향이 하방으로 내려가는 것을 방어하지 못한 점에 관한 책임에 비판하는게 옳아 보인다. 흔히들 말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패인 경우로 비판받는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상위권에 위치한 이들에게 미리 공지 했어야 했고 이에 따라 비판해야 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책임부여(노블리스 오블리제)가 계급화로 변질될 수 있기에 늘 경계해야 할 것이다. 책임이 부여되면 더 큰 해택을 바라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자본의 양극화는 자본주의의 특징상 자연스러운 방향이다. 국가의 경제 규칙상 범법이 없었다면 자본주의 제도 자체가 양극화가 되도록 만든 제도이다. 많은 이들이 스포츠 스타와 연예인들이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대부분의 문제는 불법적인 경제 활동으로 그 부를 쌓았을 때 문제인 것이다. 또한 자본의 격차는 사람들에게 동기부여와 결핍을 느끼게 해준다. 결핍과 고통은 발전과 행복의 원인이기에 이를 부정하면 안될 것이다.
양극화에 집중하기 보다는 위로 오를 수 있는 사다리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2.3. 양극화의 발생 원인인 자본주의, 그것이 나쁜가?
양극화의 정당함에 관해 언급해 본다. 자본주의 제도의 본질이 더 뛰어난 능력과 가치를 지니거나 가치를 창출한 이들이 더 많은 부를 차지하게 함으로써 보다 더 효율적이고 규모가 큰 가치를 낳게 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아닐더라도 어느 제도라도 발전 방향이 하방으로 향했다는 것은 많은 이들의 지원이 효율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사회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자본주의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이미 우리는 여러 사회적 제도를 부족함이 있지만 갖추고 있다. 효율을 망치는 일반적인 행위들을 현재 법적으로 제한한다. 불법적인 경제 활동 중 생각나는 것을 언급하자면 도둑질, 사기, 절도, 특허권 침해 등이 있겠다.
솔직한 심적으로 양극화에 관한 분노는 프레임으로 만들어진 분노로 보인다. 생활환경의 악화로 인해 발생한 분노의 대상을 상위권으로 맞추기 위한 경향이 나에게는 강하게 관찰된다.
자본주의의 취약점은 모든 제도의 취약점이긴 하지만 간단하게 한가지를 언급해 보고자 한다.
자본주의 문제점은 많은 이들에게 쾌락과 욕망 충족을 주었던 이들에게 더 큰 힘과 능력을 주었지만 그들이 더 효율적으로 쾌락과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그들이 더이상 효율적이지 않을때 그에 대한 간극이 매우 큰 문제로 보인다.
예를 들어 스포츠 스타가 은퇴하게 되면 그 스포츠의 인기가 줄어들고 그 스포츠로 하여금 발생했던 여러 가치들과 이익들이 줄어드는 결과로 다가온다. 즉, 경제활동의 축소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 현상이 발생하게 될때 사회문제가 생기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게 자본주의의 문제인가도 의문이다. 그럼에도 집중화된 자본의 힘이 그 가치를 잃을 때 더이상 가치를 창출하지 않게 될때 세대 교체가 필요할 때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보인다.
2.4. 양극화 이를 제한해야 하는가?
개인적인 심정으로는 굳이 필요하지는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양극화가 진행될때 역사적으로 하위권의 자산과 과실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었기에 이를 방어하는 측면이라면 자유주의 성향의 제한을 만드는 것은 괜찮아 보인다.
반면에 흔히 좌파를 부르는 사회주의자들은 상위권의 재산을 걷어서 하위권에 공급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설명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던 자본주의의 근본적 작동에 역행하는 작업이며 이는 오히려 하향 평준화를 촉진할 가능성도 있다.
물론 반론으로 하위권을 지원하면 상위권이 해내지 못한 더 좋은 가치 창출과 능력자가 출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좋은 작용이 있을 수도 있다. 즉, 사회가 그 불확실성에 동의를 하고 이미 가진 자들의 자유를 빼앗는 것이 올바른 지는 올바르지 않은지는 의견이 다를 수 있다.
상위권의 희생을 어느 선까지 정하는 수준의 문제일 것이다. 이미 우리는 세금을 통해서 많은 부분 그들에게서 자유를 가져오고 있으니 말이다. 합당한 이유라면 못할 것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문제의 본질은 현대적 제도 안에서는 부자들이라 언급되는 상위권들의 많은 재산들은 맹목적으로 사회를 악화시키는 욕망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앞서 말했다 싶이 양극화는 실직적인 사회문제는 아니지만 사회문제를 촉진하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양극화는 절대로 없앨 수 없다.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 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양극화가 생기는 이유가 인구 통계적인 문제로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예로 대체로 나이가 많은 이들이 능력이 좋거나 재산을 많이 갖고 있을 확률이 높고 이는 양극의 상위권을 차지하고 젊은 이들은 양극의 하단에 위치할 확률이 높을 것이다. 시기가 다르며 능력이 다르며 구성이 다르기에 우리는 차이가 있고 이것이 극단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2.5. 양극화를 해결하는 생각나는 방법들과 그에 따른 견해
앞서서 나는 좌파라고 불리는 사회주의 자들의 양극화 해결 방법을 언급했다. 상위권에 세금을 걷어서 하위권에 분배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방식에 반감이 있다.
조금은 이상적이라도 지속하고 지향해야 하는 방법은 하향 평준화가 아닌 상향 평준화 하려는 방법을 가져야 한다. 차별에 관한 글 ‘[생각] 당신(진보)의 미래가 있기에 ‘차별’은 불멸한다.‘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가 할 수 반감을 최소화 하는 설득이 최선의 방법이다. 또한 이들이 자발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한다.
어찌보면 아 다르고 어 다를 정도로 그다지 차이나는 주장은 아닐 수 있다. 위쪽에서 반론으로 언급된 하위권을 지원하면 그들이 더 많은 가치 창출과 능력자 출현이 된다는 견해와 차이가 있지 않으니 말이다.
이미 우파와 좌파의 경계가 현대에서는 모호 해지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이 누려야 하는 최소 수준이 올라가면서 과거에 좌파의 주장이였던 내용을 우파가 주장하고 있을 정도이다.
사회 문제라는 것이 파고들면 결국 구성원이 감정적인 상처를 받지 않도록 이를 조율하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세금을 내는 이들의 어찌보는 희생이라 보이는 부분을 고맙게 생각해야 하며 세금의 해택을 많이 받는 이들은 감사함을 느껴야 할 것이다.
요즘 세금과 지원금의 그 중요성과 가치가 무뎌지고 가벼워지는 것 같아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3. ‘양극화와 사회문제’ 마무리
이것 저것 사회 문제라면 언급되는 단어들이 그 핵심을 관찰해 보면 공통적으로 경제로 모이며 힘과 자유에 연관된다. 정말 묘하다고 할 수 있다. 가치 있는 돈 만큼 문제를 해결하는데 손쉬운 방법이 없다.
양극화를 언급하면서 우리는 양극화가 하위권의 성장을 막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볼 때는 크게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부자들의 자식들이 부자가 되는 것이 매우 쉬운 것으로 언급되지만 내가 보기에 이는 지켜지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 보인다.
양극화를 이야기 하면서 결국에는 부의 대물림과 지식(?)의 대물림을 반박 수단으로 끌어온다. 돈이 돈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돈이 돈을 불러온다는 점은 인정하는 바이다. 돈이 돈을 불러온다는게 쉽지는 않은 이야기 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아무튼 하위권의 자산을 지닌 이들이 성장을 막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회가 노력해야 함은 옳다고 본다. 왜냐하면 상위권에 있는 이들 보다 중,하위권에 있는 이들이 많고 우리의 제도가 인권은 평등하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부의 대물림과 양극화의 원인에 관해서 더 많은 논의가 이뤄질 수 있겠으나 글이 길어지는 관계로 이 정도에서 이야기를 마치겠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면서 이야기의 소재들이 추가로 늘어나는 악영향이 지속되는 것 같다. 글을 쓰면서 원래 내가 쓰려고 했던 범위를 벗어나는 내용들이 지속적으로 추가되어서 곤혹스럽기도 하다.
부의 대물림이 3대까지는 모르겠지만 4대에 이르러서는 그것이 과연 유지가 가능할지 모르겠다. 능력적 측면도 있고 일반적으로 부모의 수보다 자식의 수가 더 많으므로 나눠져 흩어지는 측면도 있다.
기업이 기술을 유지하고 끈임없이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것은 생각 의외로 어려운 일이다. 같은 사람이라도 어려운데 생각과 능력이 다른 자식들이 그것을 잇는 다는 것은 말로는 싶지만 내가 보기에는 쉽지 않을 수 있다.
성장이 정체된 상황에서 양극화는 분명이 사회적 문제로 보인다. 다만 양극화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정체된 성장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이상이다. 당신의 앞길에 행운이 있기를 바란다.
P.S.
이 글은 유튜브 영상에서 사회문제를 이야기 하면서 양극화를 지속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보고 조금은 다른 견해가 있어서 작성하게 되었다. 우리는 타인과 비교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기에 양극화가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는 거 같다.
하지만 실제로 중요한 것은 내면의 감정일 것이다. 왠지 종교적인 영역으로 빠지는 기분이 들지만 결국은 내 자신의 감각과 감정이 중요한 요소로 보인다.
유명 축구 선수가 내가 평생 써도 부족하지 않을 돈을 받는 다고 해도 무감각 한 것을 보면 부의 양극화가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 본질은 내가 가진 가치가 낮다는 것에 관한 불만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글을 작성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