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전쟁과 국제정치 – 이춘근

1. ‘전쟁과 국제정치’ 리뷰 개요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현대 사회에서 국제정치를 알아야 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글로벌화 국어로 표현하면 세계화 사회이기 때문에 국제정치를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부터 국제정세의 중요성은 국가가 생겼을 때부터 대두 되었을 것이다. 한 개인의 힘이 막강해지기는 했으나 아직은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한 인간으로서 우리는 국제정치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막강한 힘을 지닌 개인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모임인 국가라는 존재는 그 힘이 막강하다. 물론, 미래에 개인이 국가를 실질적으로 좌지우지하는 힘을 지니게 되고 이에 따라서 국가보다도 개인이 중요도가 올라가고 우주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미래가 올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시대는 아직 국가라는 단위가 매우 중요하고 국가간의 소통인 국제정치는 존재를 위해서 매우 중요한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국가의 정치 수단인 전쟁에 관해서 우리는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통해서 분쟁 단위를 전쟁 수준까지 올리지 않고 소통 단위에서 끝 마칠 수 있을 것이다.

‘전쟁과 국제정치’라는 책을 읽고 개요를 이렇게 남겨보지만 독자인 필자는 저자인 이춘근 박사의 견해에 비해서는 부족한 식견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주길 바라며 책 리뷰를 시작해 보고자 한다.

시작은 인용의 인용이 들어간 전쟁과 국가에 관한 인상적인 언급으로 시작하고자 한다.

‘War Made the State and the State Made War’ 즉 전쟁은 국가를 만들고 국가는 전쟁을 한다’는 명제를 만들었다.[Charles Tilly, Coercion, Capital, and European States AD 990-1992 (London: Blackwell, 1975)]

전쟁과 국제정치 – p.52

2. ‘전쟁과 국제정치’ 리뷰 본문


이춘근 박사님의 ‘전쟁과 국제정치’는 필자가 읽었지만 정말 핵심적인 언급이 많아서 거의 책의 한페이지 마다 밑줄을 긋고 곱씹어야 하는 내용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앞서서 과거 유튜브 강의를 리뷰하고자 했지만 강의 리뷰도 장대하기에 결국은 이렇게 책 리뷰로 갈음 하고자 한다. 따라서 책을 리뷰하고자 했는데 책에 인상적인 언급들이 많아 그 방대한 양에 리뷰를 작성하기 힘들었다.

분명 책은 출판하고 6개월 되었을때 다 읽었지만 지금은 5년이 지나게 되었다. 아무튼 앞선 리뷰에서처럼 책의 내용을 인용하고 그에 따른 생각을 작성하는 식으로 리뷰를 작성해 보고자 한다. 거르고 걸러 우선순위를 두워서 리뷰의 길이를 조절하고자 했다. 시작해 본다.



그렇다면 이 무지막지하게 비싼 무기들은 왜 사오고 있는 것일까? 이 무기들은 대략 그 수명을 40년 정도로 잡고 있는데 만약 40년 동안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서 이 무기들을 한 번도 실제 전투에 써보지 못한 채 내다 버리고 새것을 다시 사와야 한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이 같은 질문이 말이 되는 질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무기는 전쟁을 하기 위해 사오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일 것이다. 무기를 사오는 이유는 ‘전쟁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믿는 사람들은 40년 동안 전쟁이 발생하지 않아서 이런 무기들을 한 번도 실제로 쓰지 않는 채버리게 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전쟁과 국제정치 – p.41

이 내용은 처음 들었을 때는 가히 충격적인 내용이며 이런 식의 방식으로 생각하지 못했다는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던 부분이다. 가치를 지키는 가치에 관해서 생각해 보게 했던 부분이였다.

위의 내용에 따라서 사드 배치와 미사일 방어 체계가 왜 필요한지 타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점이 정말 괜찮은 논리의 근거라 판단 했으며 국방의 근본에 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는 내용이다.

물론, 국방에 지나친 금액을 사용하는 것은 옳지 못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전쟁을 하지 않기 위함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지출이 실패한 것이나 다름 없다는 해석은 참으로 놀라움에 고개를 절래절래 젓게 만들 정도였다.

앞으로도 계속 비슷한 인용이 나오겠지만 국방의 첫번째 목적은 안보이며 전적으로 전쟁을 사전으로 막는데 있다. 물론,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전쟁을 하는 국가도 있기는 하지만 그와 관련해서는 분명히 우선순이는 있어 보인다.



국제체제는 국가 간의 문제를 권위 있게 해결해 줄 수 있는 왕(혹은 정부)이 없는 체제다. 그래서 무정부 상태라고 부르는데 무정부 상태가 무질서 혹은 혼란, 혼동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무정부 상태에도 질서가 존재하는데 그 질서는 힘에 의해 유지되는 질서인 것이다. 막강한 힘을 가진 국가에 의해 유지되는 질서가 국제질서인 것이다.

전쟁과 국제정치 – p.47

이춘근 박사님의 국제정치 관련 이야기를 들으면 실제로 정치라는 것이 어떻게 돌아가고 우리 사회라는 것의 질서가 어떻게 이뤄지는 것인지 이해할 수 있는 시야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경찰의 존재, 법의 존재, 행정의 존재 의의를 점점 이해하게 해주고 우리가 생활에 있는 안전이 어디에서 나오는 지도 알 수 있다. 어렸을 적 힘이 작았을때 느꼈던 공포가 지금으로서는 없다는 점도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아무리 나쁜 평화라도 전쟁보다는 낫다?’라는 말을 진정 진리라고믿는 사람들에게 제안하겠다. 그대들이 원하는 평화를 유지하는 좋은 방법이 하나 있다. 대한민국 군대를 해체하면 된다. 군대가 없으면 원천적으로 전쟁 불능의 상황이 될 터이니 말이다. 그대들의 논법이라면 이완용은 정말 평화주의자였다. 일본과 전쟁을 했다면 수많은 조선인들이 죽었을 터인데 나라를 ‘평화적’으로 일본에게 넘기는 바람에 우리는 피 흘리지 않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래서 아무리 나쁜 것일지라도 평화를 유지했다. 그런데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인가? 아무리 나쁜 평화라도 전쟁보다는 낫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전쟁과 총을 택한 이순신과 안중근을 존경하는가?

전쟁과 국제정치 – p.54

군대의 필요성을 확실히 알게 해주는 인용구이다. 우리의 평화가 어디에서부터 유지되는지 알 수 있는 말이다. 신용은 비용을 낮추지만 신용이 깨짐을 우리는 대비해야 한다.

목숨 값을 최대한 지키기 위한 비용은 얼마인가? 정말 어려운 질문이다. 우리의 목숨은 하나이기에 그 가치를 메기는 것에 비용은 우리의 발전을 더디게 한다.

어느 정도로 보장이 되어야 우리는 안정적으로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일까?



국가들은 모두 국가이익(national interest)을 추구한다. 국가이익이란 국가의 생존, 경제발전, 권력확보, 자존심의 확보 등으로 구성된다. 필자는 학생들에게 국가이익을 SPPP라고 외우라고 알려준다. SPPP는 Security(국가안보 및 생존), Power(힘의 획득), Prosperity(부의 획득), Prestige(명예의 획득) 등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전쟁과 국제정치 – p.78

위의 우선순위는 평가에 따라서 사람의 따라서 주관성이 들어갈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이것 또한 어렵다고 생각한다. 당장에는 힘을 얻는 일이라도 장기적으로는 국가안보 및 생존에 위험이 된다면 어떠하겠는가?

국가 이익을 추구하지만 내가 이전에도 언급했다 싶이 미래를 보는 시야 즉, 비전은 사람마다 다르고 정치 지도자마자 다르다. 이상주의적이라고 우리가 말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위의 우선순위대로 국가를 이끌고 있다고 생각 할 수도 있다는게 현실이였다.

그래서 정말 실제 정치가 어떻게 될지는 결국은 내가 볼때는 어떤한 사람들을 교육을 통해서 키워내느냐가 국가의 미래를 바꾸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흔히들 자유주의적으로 키워진 세대들이 국가르 부강하게 한다. 이후로 좋은 시절을 보낸 세대들이 사회주의적으로 길러지며 정반합을 이루는 것으로 느껴진다.



예로서 히틀러의 침략전쟁에 대항해서 싸우지 않는다는 것은 평화주의라고 말하기보다는 오히려 비겁한 일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전쟁과 국제정치 – p.189

돈보다 소중한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전쟁을 그만 둘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끝에 폭력을 쓰는 이유는 종국에 소중한 것을 위해서이다.

그 소중한 것이 목숨을 넘어서면 상대를 죽이게 될 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후에 그게 실수임을 혹은 상홍이 나아진 상태에서는 반성하며 평생을 피로 물든 양심을 갖는다는 다고 해도 말이다.

민주주의 국가들 상호 간의 관계가 평화로운 이유는 (1)민주국가들은 국제기구의 네트워크를 통해 공동적인 유대관계로 연계되어 있다. (2)2차 대전 이전에 민주국가들은 숫자도 적었을 뿐 아니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3)2차 대전 이후 민주주의 국가들은 소련 및 소련의 동맹국으로부터 공동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4)산업이 발달한 국가가 전쟁에 빠져든다는 것은 치러야 할 대가와 기대되는 이익을 비교할 경우 매력적인 일이 되지 못했다. 2차 대전 이후 민주주의 국가의 대부분은 산업이 발달한 선진국이었다는 사실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전쟁과 국제정치 – p.299

(민주주의적 평화론의) 치명적약점은, 이 주장은 너무나 많은 것을 증명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만약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시민들이 그토록 전쟁을 혐오한다면, 그들은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과는 물론 독재국가들과의 전쟁도 혐오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결국 어떤 전쟁들에 대해서 똑같이 싸우기 원치 않아야하는 것이다.(…) 게다가 또 다른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영국도 이들 전쟁에서 미국 편에 서서 함께 싸웠다.이 같은 사실들은 왜 민주주의적 평화론이 민주주의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비민주적 국가들보다 더욱 평화로운 나라라고 주장할 수 없는지의 이유를 설명해 준다. ‘John J. Mearsheimer, The Great Delusion: LiberalDreams and International Realities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2018)이춘근(역) 미국외교정책의 환상과 현실』 (서울: 김앤김북스, 2020)]

전쟁과 국제정치 – p.303

민주주의를 가진 국가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과 관련된 책의 내용인다. 인용에 인용이 들어가긴 했는데 많은 생각을 해주는 부분이다. 민주적 절차를 통해 전쟁에 돌입하는게 어렵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왜 민주적이라 생각되는 유럽에서 왜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했나? 생각해보면 결국은 전쟁을 하고 싶은 국가가 있다면 결국 내가 볼 때 전쟁을 피할 수는 없다. 규모를 최소화 하면서 마무리르 짓는 것 의외에는 없어 보이기도 한다.

분석을 이리저리 여러 관점에서 하지만 종합적으로 볼때 전쟁이라는 것은 정치의 수단이라는 것으로 정치의 산물이라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



힘의 불균형 때문에 일어난 전쟁도 있지만 힘이 비슷한 나라들이 싸운 경우도 많았고, 힘이 약한 나라가 강한 나라를 향해 선제공격을 가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전쟁과 국제정치 – p.345-346

전쟁은 정치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것을 확실하며 이는 명확해 보인다. 여러 국가의 힘과 관련된 이론도 있다. 힘이 강한 나라가 힘이 약한 나라를 공격한다. 각 국가의 힘의 불균형이 생겼을때 전쟁이 일어난다 등이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혹은 역사적으로 앞선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공격한다는 주장은 역시나 터무니 없었으며 앞선 정리 된 생각과 같이 정치가 주된 원인으로 보인다. 약한 나라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강한 나라를 공격하기도 했다는 점은 그 예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패권적 안정이론은 막강한 패권국(hegemon)이 존재하는 경우, 국제체제에 속한 모든 국가들이 이득을 취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전쟁과 국제정치 – p.366

패권이 존재하는 상태가 패권국이 설정한 질서 안에서 더 안정적이며 평화롭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맞는 것으로 판단 된다. 질서에 불만이 있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질서를 용인 할 수 있는 상태에서 변경 할 수 있다면 그 방향이 그나마 이상적이지 않나 개인적으로는 판단된다.

동아시아의 중국의 패권도 비슷한 것인가 생각이 들긴 하지만 전쟁을 포함한 정치적으로는 그 편이 안정적이라고 보여진다. 다만 국내 정치적으로 조선이라는 나라를 보면 안타깝지만 말이다.

국가란 물리적 폭력의 사용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유일한 조직이다. 국가란 폭력을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허가를 받은 유일한 조직이다. 폭력 사용을 합법적으로 승인받은 국가들이 모여 사는 국제정치체제와 국가 간의 관계는 군사력이 언제라도 사용될 수 있는, 인간 생활 영역에서 가장 폭력성이 높은 영역이라 말할 수 있다.

전쟁과 국제정치 – p.388

위의 말에 정말로 공감하다. 사회에서 폭력을 수단으로 지니고 있는 것은 현대에는 국가만이 다수의 사람에 의해서 인정 받는 것이기에 법으로도 민주주의에 의해서도 허가 되는 것이다. 뭐 현실에서는 불법이 늘상 있고 법이라는 폭력 제한이 미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은 상식일 것이다.

공권력이라는 것이 진실로 폭력을 절대적으로 막을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국가를 사람으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앞서서 언급되었다 싶이 무정부 상태인 것이다. 설사 무정부 상태는 아니더라도 공권력이라는 것이 실제로 영향력을 미치지 않는 상태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전쟁은 국가를 만들고 국가는 전쟁을 만든다’는 찰스 틸리 교수의 논지는 역사적 경험에서 추론되는 진리 중 하나다.

전쟁과 국제정치 – p.389

위의 말은 정말로 인상적이고 공감되는 말이다. 따져보면 우리 대한민국 정부는 세계 2차대전의 산물이다. 미국과 일본과의 전쟁의 산물인 것이다. 또한 한국전쟁을 통해서 더욱이 확고해졌다고 생각한다.

폭력을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최대의 집단이라는 점에서 늘 공감하고 그러한 집단의 제어를 정치인들이 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군인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전쟁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쟁을 하지 않기 위해서인 것이다. 군대는 100년에 한번 써야 할 일이 발생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전쟁과 국제정치 – p.394

앞선 내용에서처럼 국방에 돈을 투자한다는 것은 보험과도 같은 개념이 있다는 점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무기의 사용은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것에 있다는게 첫번째 목적을 당성한 것이다.

그리고 무기는 그 자체가 독립 변수라기보다는 언제라도 종속변수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인간이지 무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쟁과 국제정치 – p.447

전쟁의 위협이 군비경쟁을 만든 것이지 군비 경쟁이 전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내게도 와닫는 말이였다. 그런데 전쟁을 생각하고 있는 대상이 군비 경쟁의 결과를 통해서 우위에 있다고 생각이 들면 그 상황에서 전쟁은 일어 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무기의 축적은 본질적으로 더 근본적인 상황인 불안정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닌 것이다.

한스 모겐소 교수 역시 ‘인간은 무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들은 싸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라고 언급하였다.

전쟁과 국제정치 – p.466

위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다만 나로서는 조금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다.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필요함을 느끼고 무기를 갖는 다는 것이다. 알지 못하는 것에서부터 오는 대 비 되지 않았다는 상황이 발생되지 않기를 바란다.

과연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스페인의 방문을 예상하고 대비했을까? 미지의 무언가로부터 우리는 앞으로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까? 너무 나아가는 생각이지만 말이다. 일단은 우리는 이 서로의 이익에 관한 아쉬움으로 생기는 문제와 교육과 정보의 왜곡으로부터 오는 평범함의 괴리로부터 오는 부족한 발전와 성과에 아쉬움을 감내할 수 있을 것일까?

결국은 시간이 그 결과를 어떻게서든 어떤한 의미로든 보여줄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 길에 많은 희생과 어려움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전쟁에서 사용된 무기가 전쟁을 잔인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전쟁을 잔인하게 하는 것은 무기를 사용하는 인간들인 것이다.

여기서 또 하나 우리가 잊으면 안 되는 전략의 교훈은 무기는 전쟁의 참혹함을 결정하는 독립 변수가 아니다’는 것이다. 무기 때문에 전쟁이 잔인해지거나 그렇지 않게 바뀌는 것은 아니다. 무기의 발달은 전쟁의 잔인성 여부에 독립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그 무기를 사용하는 인간들의 전략, 전술의 변화는 무기의 발달로 인해 전쟁을 더욱 잔인하게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전쟁과 국제정치 – p.491-492

전쟁의 잔인성과 전쟁의 혹독함은 서로의 정치에 의해서 이뤄진다. 그들의 교육을 통해 그들의 시기와 질투를 통해 아니면 만들어진 분노일 수도 있다. 대중을 향한 그들의 분노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통제하지 못한다면 그들을 어떻게 사라지게 할 것일까?

결국은 시간과 교육 밖에는 나에게는 답이 안보인다. 뇌리 속에 심어진 교육에 따른 마음은 정말로 변화할 수 없는 것인가? 결국은 변화는 다음 세대를 통해서 너무나 더디지만 천천히 가져가야 하는 것일까?

많은 신 정보와 지식들이 전세계 인류에 닿고 있는 지금이지만 최근에서는 그 정보마저 오염되고 있는 실정이다. 과연 우리들은 인류의 희생을 최소화 하는 방향으로 올바른 정보로 서로의 악한 감정이 아닌 긍정적인 감정을 지니게 하면서 더 낳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인간은 부유할 수록 더 너그러워진다고 하는데 부디 그러한 세상이 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아직도 갈길이 멀어 보인다. 세계의 많은 이들이 아직은 가난하고 부족한 실정이다. 나 또한 부족함을 느낀다.

아직 과학 및 엔지니어링 그리고 금융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아직 우리의 사명은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좀 더 우리는 부를 만들어 내야한다. 나는 아직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왜 그렇게 욕심을 내는지 때로는 야속할 뿐이다. 자신의 자유를 위해서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려 드는지 정말로 어려울 뿐이다.



전쟁이 결코 전자 게임이 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전쟁은 정치이며, 전쟁은 인간의 행위다. 전쟁은 인명이 피해를 입는 일인 것이다. 사람들의 목숨은 그대로 있고 재산만 손해를 보는 일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 전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아무리 좋은 무기가 발명되어도 그 무기를 가지고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들은 무섭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자신이 죽을까 봐 두렵다. 또한 적군을 죽이는 일은 기쁜 일인가?

전쟁과 국제정치 – p.514

의지를 꺽어야만 전쟁은 멈춘다. 또한 의지가 생기게 되면 전쟁은 발발한다. 강요에 의하던 환경에 의하던 의지를 따른다. 또한 따르는 의지가 없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강요시키는 의지가 없어도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서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욕심에 우리는 의지를 키우고 의지를 꺾는다. 생각하는 존재들이여 우리는 우리의 의지는 우리들이 의지가 존재들이 더 긍정적인 방향을 향하기를 바라고 있기를 희망한다.

어느 경우에라도 궁극적인 승리는 영토, 시민, 자원을 직접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전쟁과 국제정치 – p.517

전쟁의 승리는 주권의 존재 여부일 것이다. 국민을 약화 시키는 것일 것이다. 과연 우리 인류는 이 복잡한 세상 속에서 각자의 전쟁의 길에 궁극적인 승리를 할 수 있을까?

전쟁이란 궁극적으로 의지의 싸움이지 기계의 싸움이 아니다. 결과가 희생을 정당화시킬 수 있기 위해서 수단은 목표에 종속되어야 한다.

전쟁과 국제정치 – p.518

전쟁을 하게 된다면 진실로 목표의 달성에 벗어나는 부수적인 일들을 최소한으로 해야 할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일이였다. 미래에 언급될 수도 있고 칭찬을 들을 수도 비난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미래를 어찌 알겠는가? 그럼에도 우리의 선택은 목적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우리 스스로가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우리는 냉전의 종식을 기뻐하고 있지만 국제정치의 역사를 거시적으로 살펴보면 냉전의 시대는 지난 500년의 국제정치의 역사 중에서 가장 평화로운 시대였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도덕주의자 이상주의자들은 냉전시대의 평화가 진정한 평화냐고 반문할 것이다. 현실주의자들은 국제정치의 영역에서는 ‘전쟁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그 자체’를 평화라고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전쟁과 국제정치 – p.547

부유한 세상이 되어가는 중이라 생각했다. 부유함이 상대적으로 차이가 생기고 우리에겐 기회가 없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조바심이 난다. 우리의 인생은 그렇게 길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우리가 전쟁을 하게 되는 이유 중 내가 생각하기에 그 수단으로 내몰리는 이유는 우리의 인생이 생각보다 국가의 수명이나 다른 집단들의 수명보다 짧기에 일어날 수 있는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우리의 조급함 내 생에 너무나도 이루고 싶은 꿈이 이번 생에는 일어나기 힘든 시기라는 것을 알았을때 좀 더 늦게 더 세상이 풍요롭고 발전한 이후에 태어났으면 하는 아쉬움이 함께하면 무리하면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오판을 할때 전쟁은 우리의 곁을 함께한다.

어느 정도는 현실에 순응을 하고는 살아야 되며 더 크고 발전된 미래를 후대에게 맡기는 것도 방법인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우리의 불안과 우리의 무지가 다시금 큰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3. ‘전쟁과 국제정치’ 리뷰 마무리


‘전쟁과 국제정치’ 정말로 많은 생각과 의문을 가지게 하는 책이다. 이춘근 박사님의 유튜브 채널에서 많이 들어왔고 많은 내용이 유튜브에서 하신 내용이라 이미 알고 있었던 내용이 대부분이였다.

그럼에도 다시 복습하는 차원에서 책을 읽었다. 강의 내용을 정리를 하던게 있었는데 그 정리를 그만두고 책을 리뷰하는 식으로 하려고 했던 정리를 하지 않고자 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리뷰를 작성하기 시작했었는데 정말로 시간이 오래걸렸다.

홈페이지를 만들고부터 줄 곧 작성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제서야 조금은 아쉬움이 남지만 어떻게든 마무리를 짓고 있다. 리뷰가 좀 두서 없고 생각나는 대로 적는 의식의 기법으로 후반부는 작성이 되었다.

우연하게 탈북자 영상을 보면서 알게 되었던 이춘근 박사님을 통해 알게된 국제정치와 전쟁과 관련된 내용들은 정말로 나의 삶에 많은 영향을 준 것 같다. 머리로는 현실주의 국제정치를 알겠지만 누구든 이상을 따라가고만 싶어진다.



현실을 살아갈려면 힘이 필요하다. 정글도 개발되며 사막에서도 살아간다. 다만 그곳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며 우리는 기술을 가지고 현재로서는 실현이 가능하다. 불가능이라 믿었던 일들이 그 당시에는 어려웠을지 모르지만 우리 후대들은 점점 현실로 만들어 가고 있다.

내가 보았을때 인류는 결국 방법을 찾아 낼 것이고 이 혼란스러운 국제정치에서 결국은 안정감을 찾아 낼 것이다. 다만 아직은 힘이 부족할지 모른다. 나는 그 방향을 찾아가고 있다고 본다. 우리는 결국은 그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이들을 모아서 나아갈 것이다.

결국은 정글을 정복하고 현실이 허락하는 내에서 인류의 안정을 찾을 것이라 굳게 믿는다. 그럼에도 아직 나로서는 우리에게는 아직 힘이 부족하다. 좀 더 힘을 얻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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