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환경문제와 지구 온난화를 말하다.



1. 개요


환경 문제에 관해서 나는 친누나와 다툰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정확히는 왜 다툰지도 모르겠다. 이전 글에서도 이야기를 다뤘지만 사람들이 다투는 경우는 대부분은 명확하지 못한 소재일 때가 많다.

명확하지 못한 소재는 과학이 부재하여 사실에 합의가 되지 않은 내용, 그리고 미래를 다룬다. 환경문제는 현세대에 많이 언급되는 범세계적인 문제로 대두된다.



일단 친누나와 다퉜던 내용은 친환경 제품과 사용 등 환경을 위해서 강제력을 써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였다. 이미 과학 기술적으로 환경 친화적인 제품과 대두되는 환경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지만 경제적 문제로 사용을 못하기에 강제력이 있어야 더 높은 단계로 진보 할 수 있다는 의견이였다.

나는 더 괜찮은 진보가 있어서 자연스럽게 친환경적인 제품 등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였다. 소비자가 불편한 강제력과 감당하지 못하는 강제력은 결국은 와해되며 이뤄지기 어렵다는 생각이였다. 우리는 능력이 있지만 눈앞의 이익 때문에 이에 관한 책임을 떠 넘기고 있는 것일까?



아무튼 개인적으로 제도적으로 강제력을 행사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어서 조금은 다투웠던 것 같다. 또한 과학과 공학을 좋아하는 입장으로서 강제력이 과학과 공학의 위축을 불러오지 않을까 하는 조금의 반감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환경 문제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무엇이 환경 문제이며 지금 세계는 무엇을 목적으로 환경에 관해 문제 삼고 제도를 가다듬고 있는지 개인적으로 느끼는 바와 생각을 남겨 보도록 하겠다.



2 본문


어렸을적 문구로 지구가 아프다. 지구가 병들고 있어요.라는 문구를 듣고 본 기억이 있다. 현재 성인이되었고 과학과 공학에 관심을 지니고 있는 사람으로서 앞의 문구는 너무나도 문학적이구나 생각된다.

지구를 의인화 해서 감정에 호소하는 문구이다. 현재 문구를 보면서 느끼는 바는 너무나도 이기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문구라고 생각된다. 지구가 인간이 살기 이로운 것은 지극히 우연이라 할 수 있다.


지구는 과학적으로 45억년의 역사에서 지금과 같은 환경을 지닌 경우는 그다지 없었던게 현실일 것이다. 과학에서 말하는 지구의 초기 모습은 지옥이 따로 없을 정도로 험악하게 묘사된다.

화산이 쉴세 없이 폭팔하며 소금비가 내리는 혹독한 환경이였다고 한다. 또한 후에 지구는 바다에 뒤덮혔고 대기의 조성은 결코 인간이 살아가기 좋지 않은 상태였다. 또한 그 당시의 온실효과가 더 심했다고 알려진다.


fox, sleep, fall-7405603.jpg

즉, 다시 원 주제로 돌아와서 지구가 아프다고 병들었다고 언급하는 것은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문구이다. 즉, 앞의 문구의 속 뜻은 인간이 살기에 이롭지 않은 상태로 변해 가고 있으며 지구를 인간에게 이롭게 유지해야 한다는 언급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서 산소를 소비하는 생물체가 아니라 산소를 생성하는 생물이 넘쳤을 당시 지구에는 지금보다 높은 산소 농도를 지녔다고 한다. 또한 지금보다 낮은 이산화탄소 농도를 지녔던 적도 있었고 지금보다 훨씬 많은 이산화탄소 농도를 지닌 때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추측하는 과거 이산화탄소의 농도를 보자면 지금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역사적으로 높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과거에 이상화탄소 농도가 높았다는 연구도 있다고 한다.

그 예는 식물의 대번식으로 과량의 산소로 구성된 대기로 인해서 대화제가 발생해서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가 축적된 되었던 지구의 과거가 있었다고 한다.



과도한 이산화탄소 농도에서 지구는 별탈 없이 생명체를 지속적으로 품어왔으며 생물체에게는 재앙이었을지 몰라도 무생물(?)인 지구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특별한 것이 아니였을지도 모른다.

즉, 우리가 현재 지구 온난화와 자연재해 등을 언급하며 지구의 이상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인간 사회에 삶에 영향을 미치고 이 영향을 줄일려고 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결코 그것이 단순히 올바르기 때문에 하는 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구 환경 문제에 관심을 쏟는게 올바른 이유는 우리의 삶을 더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는 환경이라는 것과 관계가 되어서 땔래야 땔 수 없는 변수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구온난화

지구에 살고 있는 생명체로서 인간이 지구의 환경에 영향을 주는 것은 당연한 부분이다. 다만 역사를 통해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욕망을 채워주거나 고통을 잊게하는 변화만을 추구할 수 있다.

지구를 이인화 하면서 사람들에게 고통를 주입하는 것은 변화과 힘을 향하게 만드는 강제력이다. 그럼에도 고통으로서 인간의 의지를 유도하는 것은 그렇게 강력하지 않아 보인다. 결국은 욕망 혹은 쾌락을 주입하는 쪽으로 의지를 유도해야 지구 온난화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본다.



욕망 쪽은 당근이고 고통은 채찍이다. 필자의 생각으로 인간의 욕망을 제한하는 정책이 있다면 그것과 관련된 제한을 풀어주는 탈출구가 동시에 제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정치의 문제로 결국 당시의 힘이 있는 집단에 의해서 정해질 것이다. 유혈 사태가 벌어지지 않고 인류가 이롭게 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3. 마무리


참 오래 전에 남겨둔 글감이다. 앞선 내용을 종합해서 결론을 내리기도 조금은 어려움이 있다. 자신의 생각과 반대되는 생각에는 왜인지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나로서는 지금의 환경 문제 해결이 안되는 이유가 강제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에 반감이 있었다.

지금이라도 법적으로 강제력을 강화하면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에 말이다. 나로서는 생각이 변함이 없다. 더 나은 기술이 있어야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법적 제한도 어느 정도 진행하는 한편 그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 교육 조차도 강제성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도록 구성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나 또한 지구가 병들고 있다고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은 세대이다. 급진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점진적으로도 변화 시키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진행하면서 나의 생각은 결국은 인류가 더 좋은 방향으로 향하는 것이 어떤 방식인가에 관한 미래에 관한 이야기이다.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정치의 문제이다. 당신은 어떤 방향을 추구하는가? 어떤게 향후에 옳은 방향이라 생각하는가?

그대의 의견을 존중하지만 나로서는 선택에 기로에 있을때 과학과 공학이 이익을 보는 방향으로 더 효율적인 정치 제도 영역 보다는 과학과 공학이 이익을 보는 방향으로 유도할 것이라는 점을 남기고 글을 마무리 하겠다.

고맙다. 당신의 앞길에 행운이 있기를 바랍니다.

연관 포스팅:

구독
통지
0 댓글들
가장 오래된
최신 최다 투표
인라인 피드백
모든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