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미래에 관해서 상상해 보는 일은 재미있는 일이다. 물론 돈이 걸려 있다면 꽤나 피가 마르고 걱정되는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 홈페이지에는 이전에도 내가 생각하는 미래에 관해 작성했던 글이 두 개 있다. 각각 ‘[공학자의 생각] 내가 원하는 미래 기술’과 ‘[생각] 내가 꿈꾸는 과학발달, 인류의 미래’라는 글이다.
두 글은 거의 비슷한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미래 기술의 근간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그 근간을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개개인을 더욱 자유롭게 만들어 주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율주행 자동차나 드론 택배에 관한 생각도 그러한 관점에서 시작되었다. 자동차 사이에 근거리 통신망이 형성되어 서로 정보를 교환한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 드론 택배 역시 장거리 운송보다 짧은 거리에서 빠르고 정확하게 물건을 전달하는 방식부터 발전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미래를 생각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세상은 생각보다 느리게 발전한다는 것이다.
어른이 된 나의 능력이 그렇게 대단하지 않듯이, 수많은 사람이 책장과 컴퓨터 화면에 파묻혀 공부하고 연구하더라도 개인의 기여는 작게 느껴질 수 있다. 이러한 노력들이 모여 기술을 발전시키지만, 그 성과가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인류는 다시 우주를 향해 로켓을 쏘아 올리고 있으며, 위성통신을 통해 기존 통신망이 닿기 어려웠던 지역에서도 인터넷을 이용할 가능성이 확대되고 있다. 기술의 발전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다만 새로운 기술을 연구하고 구현하는 것과, 이를 상업적으로 성공시키고 사람들이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정치적·경제적 환경도 기술 투자와 산업 발전에 영향을 미친다. 앞으로 국제질서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에 따라서도 기술 발전의 방향과 속도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사족은 이 정도로 하고 본래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컴퓨터는 순탄하지 않은 발전 과정을 거쳐 이제는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형태로 우리의 일상에 자리 잡았다. 그런데 인류가 오래전부터 상상해 온 인간형 로봇은 왜 아직 우리의 일상에 들어오지 못했을까?
나는 컴퓨터가 일상화된 과정을 바탕으로, 인간형 로봇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우리 생활에 들어올 수 있을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2. 본문
2.1. 인간형 로봇은 왜 아직 일상화되지 않았을까?
어렸을 당시만 해도 ‘터미네이터’, ‘아이, 로봇’, ‘바이센테니얼 맨’ 등 로봇을 소재로 한 영화를 접했던 기억이 있다.
참고로 ‘바이센테니얼 맨’은 영화 제목이 생각나지 않아 ‘로봇이 인간이 되는 영화’라고 검색해서 다시 찾아보았다.
아무튼 영화 속에서 인간처럼 움직이고 사람과 대화하는 로봇은 먼 미래의 기술처럼 묘사되곤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인간형 로봇은 여전히 일상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로봇 자체가 상용화되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산업용 로봇은 이미 공장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로봇청소기처럼 가정에서 활용되는 제품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번에 이야기하려는 것은 그러한 특정 목적의 로봇이 아니다. 인간과 유사한 신체를 가지고 인간이 수행하는 다양한 물리적인 작업을 대신할 수 있는 범용 인간형 로봇을 말하는 것이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와 같은 기업들이 인간형 로봇을 개발하며 다양한 동작을 보여 주고 있지만, 이를 일반적인 가정에서 구매해 여러 작업에 활용하는 단계와는 아직 거리가 있다.
로봇이 일상화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적으로는 가격과 성능, 내구성, 그리고 무엇보다 구매할 만한 이유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 문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로봇이 일상화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이전에 미래 기술의 근간을 개인의 자유라고 이야기했다. 우리가 매일 반복해야 하는 일을 기계가 대신하고, 필요한 일을 명령만으로 수행할 수 있다면 인간은 그만큼 자신의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컴퓨터가 계산이나 문서 작업을 보조했다면, 인간형 로봇은 인간의 신체적인 활동을 보조하는 기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2.2. 컴퓨터는 어떻게 일상생활에 들어왔을까?
인간형 로봇의 미래를 생각하다 보니 컴퓨터의 발전 과정이 떠올랐다.
초기의 컴퓨터는 크고 비쌌으며, 사용할 수 있는 곳도 제한적이었다. 복잡한 계산과 자료처리처럼 특정 목적을 위해 전문적으로 사용되는 장비에 가까웠다.
그러나 반도체와 전자기술이 발전하면서 하드웨어의 크기가 줄어들고 성능이 개선되었다. 대량생산과 기술 발전으로 개인이 구매할 수 있는 컴퓨터가 등장했고, 그와 함께 소프트웨어도 발전하기 시작했다.

중요한 점은 단순히 컴퓨터의 성능이 좋아졌다는 것이 아니다.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일이 점차 다양해졌다는 것이다.
문서를 작성하고 계산하던 기계가 게임을 실행하고, 음악과 영상을 재생하며, 인터넷을 통해 다른 컴퓨터와 연결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금융과 통신, 업무, 교육, 오락 등 정말 다양한 활동을 하나의 기기로 수행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스마트폰은 컴퓨터의 기능을 손에 들고 다니는 형태로 발전시켰다.
최근에는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컴퓨터를 활용하는 방식도 다시 변화하고 있다. 컴퓨터의 발전이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컴퓨터 역시 무한정 빠르게 발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드웨어에는 물리적·경제적인 한계가 존재하고, 더 높은 성능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과 생산설비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돌이켜 보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가 처음부터 이러한 모습을 갖추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드웨어의 발전과 소프트웨어의 발전, 그리고 사용할 수 있는 일의 확대가 서로 영향을 주면서 컴퓨터의 일상화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2.3. 인간형 로봇도 컴퓨터처럼 발전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인간형 로봇도 컴퓨터와 비슷한 발전 과정을 거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인간형 로봇은 컴퓨터의 또 다른 인터페이스일지도 모른다.
컴퓨터가 화면과 키보드, 마우스, 터치스크린 등을 통해 인간과 상호작용해 왔다면, 로봇은 인간과 비슷한 신체를 이용해 현실 세계에서 직접 움직이고 작업하는 형태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로봇은 단순한 입력장치나 출력장치보다 훨씬 복잡하다.
현실의 물건을 인식하고, 적절한 힘으로 잡고, 이동시키며, 주변 사람과 물체를 고려해 안전하게 움직여야 한다. 따라서 소프트웨어가 발전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로봇의 손이 충분히 정밀하지 않다면 아무리 좋은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더라도 수행할 수 없는 작업이 존재할 것이다. 반대로 하드웨어가 충분한 성능을 갖추었더라도 이를 제대로 제어할 소프트웨어가 없다면 활용 범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컴퓨터와 마찬가지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함께 발전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로봇도 컴퓨터처럼 일정한 기간마다 새로운 세대의 제품이 등장하게 되지 않을까?
부품을 교체하거나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해 성능을 높일 수는 있겠지만, 모든 문제를 그렇게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컴퓨터도 오래된 플랫폼에서는 최신 부품이나 프로그램을 활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로봇 역시 관절과 구동기, 센서, 배터리, 연산장치가 발전하면서 일정한 시점에는 전체 하드웨어를 교체하는 편이 합리적일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생각하면 인간형 로봇이 불과 몇 년 만에 완성되어 대중화될 것이라는 전망에는 조금 신중해진다.
개인적으로는 1990년대 이후 컴퓨터가 발전하고 대중화된 수십 년의 과정과 비교해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반드시 같은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는 아니다. 로봇은 이미 발전한 컴퓨터 기술을 활용할 수 있지만, 물리적인 기계로서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기 때문이다.
다만 컴퓨터와 비슷한 방식으로 발전한다면, 인간형 로봇의 일상화 역시 점진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2.4. 로봇의 일상화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그렇다면 일반인이 인간형 로봇을 구매해 사용하는 시대가 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우선 가격이 중요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컴퓨터보다는 비싸더라도 자동차보다는 저렴한 수준이어야 대중화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반드시 자동차 가격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인간형 로봇이 고가의 내구재가 될 가능성을 생각하면, 소비자가 장기간 사용할 수 있다는 믿음도 필요할 것이다.
자동차처럼 10년 안팎, 가능하다면 그 이상 사용할 수 있도록 내구성과 수리 체계가 갖추어져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구매 방식이 하나로 정해질 것 같지는 않다. 개인이 직접 구매할 수도 있고, 렌털이나 리스 형태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중고 로봇 시장도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가 부담할 수 있는 가격과 그 가격에 걸맞은 활용 가치가 만들어지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그 활용 범위를 집안일에만 한정하고 싶지 않다.
인간형 로봇은 커피를 만들거나 요리하고, 물건을 정리하는 일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필요한 물건을 가져오거나 외출할 때 챙겨야 할 짐을 준비하는 일도 가능할지 모른다.
카메라를 이용해 사진과 영상을 촬영하거나 개인의 취미 활동을 보조하는 모습도 상상할 수 있다.
물론 인간형이라는 구조가 모든 작업에 효율적인 것은 아니다. 무거운 짐을 운반하는 일은 바퀴가 달린 운송장비가 더 적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의 생활환경은 이미 인간의 신체를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다. 문손잡이를 사용하고, 계단을 오르며, 물건을 집고, 여러 도구를 활용하는 일을 하나의 기계가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은 상당한 장점이 될 수 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자잘한 일들을 로봇에게 시켜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모든 구매가 경제적인 이유로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니까.
컴퓨터가 업무뿐 아니라 게임과 오락을 통해서도 보급되었던 것처럼, 로봇 역시 실용성과 함께 새로운 기술을 경험하고 자동화하려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로봇의 가격과 수명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소프트웨어의 확장성이다.
초기에는 로봇 제조사가 하드웨어와 기본적인 작업 소프트웨어를 함께 개발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컴퓨터가 그랬던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 외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등장하지 않을까?
요리나 청소, 촬영, 물건 정리 등 특정한 작업을 더 정확하고 다양하게 수행하도록 만드는 소프트웨어가 개발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제조사가 제공하는 기능만 사용할 수 있는 로봇보다 새로운 기능을 자유롭게 추가할 수 있는 로봇이 소비자에게 더 많은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인간형 로봇은 물리적인 동작을 수행하므로 외부 소프트웨어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과정도 필요할 것이다.
결국 로봇의 성능만큼이나 어떤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는지, 얼마나 오래 지원받을 수 있는지도 중요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생산의 문제이다.
뛰어난 로봇을 개발했다고 해서 곧바로 수많은 제품을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장을 건설하고 부품 공급망을 확보하며 안정적인 품질로 대량생산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테슬라의 모델 3 역시 초기 대량생산 목표가 지연되었던 사례가 있다.
인간형 로봇은 더욱 다양한 정밀 부품과 제어기술이 필요할 수 있다. 기술 시연에서 보여 준 성능과 실제 판매되는 제품의 품질, 생산량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인 한계를 생각하면 로봇의 일상화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3. 마무리
인류는 오래전부터 인간처럼 움직이는 로봇을 상상해 왔다.
그런데 컴퓨터가 우리 생활에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을 돌아보면, 인간형 로봇 역시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된 모습으로 등장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드웨어의 성능이 발전하고 가격이 낮아져야 하며, 소프트웨어의 발전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능도 늘어나야 할 것이다.
새로운 로봇이 등장하고 이전 제품이 구형이 되는 과정도 반복될 수 있다. 그리고 제조사뿐 아니라 다양한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참여하면서 로봇이 수행할 수 있는 일의 범위도 확대될지 모른다.
물론 로봇은 컴퓨터와 달리 실제 신체를 가지고 움직이는 기계이므로 해결해야 할 물리적인 문제들이 존재한다. 생산설비를 구축하고 대량생산을 실현하는 일 역시 시간이 필요한 과정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인간형 로봇이 앞으로 몇 년 만에 모든 가정에 보급될 것이라는 전망보다는, 수십 년에 걸쳐 조금씩 발전하고 일상에 들어올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컴퓨터가 우리의 생활을 바꾼 과정을 떠올리면 인간형 로봇도 비슷한 길을 걸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미래가 반드시 예상한 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인간형 로봇이 일상화된다면 우리가 컴퓨터를 통해 경험했던 변화와는 또 다른 변화가 찾아올 수 있을 것이다.
컴퓨터가 인간의 계산과 정보처리 능력을 확장했다면, 인간형 로봇은 인간의 신체적인 활동까지 보조하고 대신할 수 있을 테니까.
결국 내가 기대하는 것은 인간의 모습을 한 기계 그 자체가 아니다.
반복적이고 번거로운 일에서 벗어나 개개인이 자신의 시간을 조금 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는 미래이다.
그러한 미래가 언제 찾아올지는 모르겠지만, 컴퓨터의 발전 과정을 되돌아보면 아직은 조금 더 긴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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