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자유를 위한 자유 의지는 어디서 오는가?



1. 자유의지를 알아야 되는 이유는?


미래의 과학이 발달 된다면 달라 질수도 있겠지만 지금 현 환경에서 인간에게 행동의 근본은 자유 의지(욕망을 따르는 것)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자유 의지는 인간의 본질적인 것이라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인간 존재 이유이자 인간의 목표라고 본다. 그런데 자유 의지를 발생시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자유를 부르짖지만, 우리가 느끼고픈 자유로운 감정의 동기는 무엇에서 기인한 것일까?

2. 자유의지는 인간의 욕망


무언가 하고 싶다는 감정 즉 욕구는 무엇일까? 이는 분명 환경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이다. 또한, 몸의 기능에 의해서 정해진다. 생물학적인 감각 기관에 의해서 그 강도가 정해지고 뇌에서 자극을 받는 것이다.

욕구의 5단계와 동기를 설명하는 이론들을 인간의 감정에 관해서 연구한 이론들이라 생각된다. 기초적인 욕구의 1단계~5단계로 나눠진다. 매슬로의 인간 욕구 5단계 이론, 욕구의 복잡성과 고차원인 욕구로 해석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자유 의지에 영향을 주는 비중의 순위로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3. 자유의지(욕구)는 내부에서 기인하는가? 외부에서 기인하는?


인간의 의지는 환경에 의해 좌지우지될 정도로 나약하기만 하다. 굶주림을 마주했을 때 인간의 자유 의지는 현대의 도덕을 초월하는 행위를 의지를 갖추고 행하게 된다. 인간의 의지는 환경에 의해서 정해지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어떤 시기에 어떤 장소에 있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의지는 영향을 받는다. 반론으로는 모든 인격체가 똑같은 환경에서 같은 의지를 갖지 않고 똑같이 행동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반론에 대한 반론으로 각자 다른 인격체가 각자 다른 환경에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자유 의지라는 것은 육체와 관련이 깊고 특히 뇌와 매우 관련이 깊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의지에 대해서 알기 위해 뇌에 대해 사고해야 한다. 과연 뇌의 발달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을까? 유전적 형질에 많은 영향을 받을까?

예를 들어 부모로부터 커피를 좋아하거나 술을 마셔도 몸에 이상이 안생기고 더불어 선호하는 유전적 신체를 지녔다고 해보자. 커피를 마시거나 술을 마시는 등 그와 연관된 환경에 각기 다른 선호도를 보일 것이다.

이어서 유전적인 형질에 의해서 환경이 다르게 인식되어 다른 성격을 지니게 되고 이러한 성격 차이가 똑같은 환경에 놓일 지라도 다른 의지와 다른 행동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4. 뇌에 대한 연구는 인간의 본질(자아)에 대한 연구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자유 의지의 깊은 부분을 탐색하기 위해서는 뇌 과학이 선행되어야 한다. 생명공학에 대한 연구는 결국 인문학과 연관 될 수밖에 없는 숙명에 처해 있다고 본다.

과거 유튜브 리뷰에서도 생각해 보았지만 인간이 생각한다는 것은 뇌에서 내린 행동의 명령을 인식하고 스스로 인정하는 행동이다.(참조 : [유튜브 리뷰] 1분과학,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 – 2020. 5. 31) 기존에 짜여 있는 뇌의 구성을 기초로 해서 환경에 영향을 받으면 이에 의해서 행동이 발생하는 것이고 자아 즉, 의식이라는 것은 그것을 했다고 믿게 하는 프로세서가 ‘생각했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왜 이런 의식, 자아라는 것이 생긴 것일까? 돌연변이에 의한 우연일까? 의식을 가진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고 생존과 인간이라는 주체에 무슨 이익을 가져다주었을까? 이익인가 손해인가도 생각해 봐야 하는 부분이다.

짜진 회로에 의해서 정해져 있는 답이 나오고 뇌가 명령에 의해서 행동한 것을 내(?)가 했다고 믿게 하는 그 무언가 행동 뒤에 활성화 되는 뇌의 자극이 있는 것일까?

실험으로 외부 자극으로 신체를 운동 시키고 왜 손을 들었느냐고 물어보고 내가 들고 싶어서 들었다고 언급했을때 자극되는 신경이 의식인 것일까? 느낀다는 것 자체가 나인 것이고 자아라는 것은 환상인 것인가? 내가 나라고 느끼는 것은 어쩌면 허상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5. 사후세계와 의지 그리고 감각, 기억


우리는 죽음 뒤에 무엇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죽음 뒤에 의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게 정론이다. 쉽게 느끼는 예시로는 신체의 활동 정지에서 느낄 감각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감각과 무관하지 않다.

다시 말해서 무이다. 우리가 깊게 잠들거나 마취에 의해서 의식이 사라진 상태와 다름이 없다. 죽음 뒤 사후세계는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의 감정을 위한 종교적 도구나 죽음을 앞둔 이들의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아니면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게 하는 도구 이거나 말이다.



의식이라는 것은 우리가 느끼는 감각의 종합이다. 영화 아바타를 예로 들고 싶다. 아바타를 조종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자 그 상태에서 뇌만 떼어내서 영양만 충분히 공급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영화에서 나오는 타 종족 ‘나비’ 족으로 ‘나비’ 족의 수명을 다 채우고 죽을 수 있을 것이다. 메트릭스 영화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얻을 수 있다.

추가적으로 감각에 대한 잔상(?)이 기억이라는 것으로 보이며 기억 그 자체가 대상을 만든다. 기억에 대해서는 치매를 예로 생각할 수 있다. 기억이 없는 존재는 그 자신을 의식할 수 없다. 또다른 예로는 자아가 생성되지 않은 상태인 유아기를 생각할 수 있다. 감각의 축적이 부족한 상태인 그 상태의 기억은 아마 많은 이들이 인지하지 못하고 또한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상응하는 실험이 필요하지만 윤리적으로 연구 진행에 한계가 있다. 아마 이 부분은 시뮬레이션 분야가 더욱 발전하게 되면 윤곽을 들어낼 수 있으리라 본다.

6. 모든 자유의지들 중 인류의 자유의지에게


뇌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호기심이 있으나 언어나 생활 환경 등 내가 생각하는 나에 대한 객관적 능력 때문에 쉽사리 공부해 보지 못하고 탐구하지 못하는 입장이라 아쉽기만 하다. 연구에는 능력, 시간, 돈이 필요하다. 또한 생명공학에서는 윤리적 문제가 다분하다.

자유의지라는 것은 허상일 수 있다. 축적된 감각이 기억으로 각인되고 이를 바탕으로 환경으로 오는 감각과 과거의 감각을 가지고 내부의 결정권에 따라서 행동하게 되며 이를 느낀다. 그 느낌이 의지이고 의지 또한 느낌인 것이다. 먹거나 본적 없는 무언가를 먹고 싶다고 느낄 수 없다.



기억(느껴본 감각)이 없는 행동에 욕구를 느끼는 것은 전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없게 될까? 착각하기 쉽지만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어느 누구도 기억과 환경에 의한 감각을 거스르는 새로운 것은 절대로 만들어 낼 수 없다. 적어도 나는 지금 그렇게 생각한다.

자유의지는 욕구(욕망)이며 이는 모든 것이 그렇듯 선악은 없다. 의미는 우리가 붙이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인류의 전반적인 욕구가 채워지는 세상이 유지되길 바란다. 이는 역사가 그렇듯 변증적으로 무한이 공격당하고 반격하며 점점 그 욕구의 수준이 높아만 질 것이다. 지금까지 역사적으로는 그러했다. 인류가 생각하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환경이 펼쳐지기를 희망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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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의 글에서 자유의지는 욕구와 추구하는 감정이라고 말했었다.(참조 : [생각] 자유를 위한 자유 의지는 어디서 오는가?) 욕구(감정)가 없어지면 부당함도 정당함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

[…] 지식을 습득한다. 이전에 나는 자유 의지에 관해서 고민한 적이 있다. ‘[생각] 자유를 위한 자유 의지는 어디서 오는가?‘에서 말이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