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학력은 차별을 만드는가? 차별을 없애는가? (학력 차별에 관해)



1. 개요


1.1. 학력 차별에 앞서 차별은 무엇인가?


원래 이 글은 이전에 작성했던 차별에 관한 생각을 정리한 글인 ‘[생각] 당신(진보)의 미래가 있기에 ‘차별’은 불멸한다.‘ 를 쓰기 전에 작성하려고 했다. 그러나 ‘학력 차별은 차별을 만드는가 차별을 없애는가?’를 작성하기 전에 차별에 관한 개인적 생각을 정리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해서 차별에 관한 글을 먼저 작성하게 되었다.

필자는 학력이라는 것이 부당한 차별을 만들고 있다며 외치는 논리가 진실인가 의심을 하며 제목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전에 작성했던 글을 보았다면 제목의 문장을 정확히 표현 하려면 다음과 같이 표현해야 할 것이다. ‘학력 차별은 부당한 차별인가? 정당한 차별인가?’가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학력 제도가 존재하는 한 학력 차별은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논의될 내용은 학력을 가지고 차별하는 것이 정당한가 부당한 것인가를 따지는 문제일 것이다. 이미 학력이라는 것의 존재 목적이 차별을 하기 위해 만든 도구 혹은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teacher asking a question to the cl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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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논의가 학력 기준 시스템을 없애야 한다는 논의가 되면 대화가 절대로 통하지 않을 것이기에 학력 시스템이 존재해야 된다는 전제는 가지고 들어가야 한다. 학력 차별을 제도적으로 없애는 제안은 이전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새로운 차별 기준의 생산을 야기할 것이 분명하다.

아무튼 정말로 학력이 부당한 차별을 만든 것일까? 부당한 차별을 만드는 주체는 누구인가? 학력을 기준으로 차별을 두는 것이 옳지 못한 행동인가? 학력에 의한 차별은 정말로 부당한 것일까? 그러면 어떤 것으로 차별을 해야 할까? 대안은 있는가? 세부적으로 학력 내에서도 존재하는 학교 서열에 따른 차별은 문제없는가?란 의문이 생긴다.

만약 차별은 절대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비현실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으면 이전에 썼던 ‘[생각] 당신(진보)의 미래가 있기에 ‘차별’은 불멸한다. ‘읽고 생각을 정리하길 부탁한다. 읽은 후에도 차별이 절대로 존재해서는 안된다고 한다면 나는 이 앞으로의 논의를 진행할 수 없다. 차별을 부정한 상태에서 읽게 된다면 반감만 더 커질 것이다.

2. 본문


2.1. 학력은 극복할 수 없는 차별인가?


이전의 글 [생각] 당신(진보)의 미래가 있기에 ‘차별’은 불멸한다.에 의한 논리로는 학력 차별은 부당한 편에는 속하지 않는다. 만약에 배움의 기회가 제도적으로 막혀 있었다면 학력에 의한 차별이 부당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학력은 마음만 먹으면 제약 없이 학력을 바꿀 기회가 있고 또 학력은 극복 가능한 차이 이기에 차별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물론 리스크는 있다. 하지만 그 리스크를 차별이라고 보는 것은 과하다고 본다.

지금까지의 다툼은 학력을 얻기 위한 리스크(어려움)가 과하다는 것에 관한 다툼으로 보인다. 리스크(어려움)가 크기에 차별이라는 것이다. 대부분 한국의 좌파들이 언급하는 논리이다. 기존의 생활을 포기해야 학력을 얻을 수 있기에 이는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이라 선전하고 이 점이 차별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학력 수준은 개인의 선택의 영역이며 그 기준은 노력에 의해 극복될 수 있는 자유로운 영역이다. 학력을 얻기 위해 투자되는 시간과 학력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과의 수준에서 많은 개개인이 학력 얻기를 포기할 뿐이지 제도적으로는 극복할 수 있는 차별이다. 학력을 얻기 위해서 능력만 있다면 수학능력시험 성적을 통해 대학을 입학할 수 있는 길은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대부분의 사회에서 장기간 경력을 쌓은 사람들은 학력을 얻기 위해 소모되는 자원과 학력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나 이점을 생각 의외로 크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주저하며 실천하지 않을 뿐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학력을 얻기 위해 투입하는 자원보다 현재 지키고자 하는 가치가 큰 것이다.

이전 글 [생각] 당신(진보)의 미래가 있기에 ‘차별’은 불멸한다.에서 언급했다 싶이 차별이라 느끼는 기준은 스스로가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기준이라고 고려할 때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었다. 소위 좌파라 하는 이들이 학력에 의한 차별을 극복할 수없는 차별 기준으로 선전하지만 나는 학력이라는 것이 오히려 차별을 없애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는 방법은 손쉽지 않다. 큰 노력과 힘이 들어가는 대학 입시가 최근까지의 사회에서는 능력의 평가 수준이 되어 왔다. 최근에는 인터넷의 발달로 교육의 질도 선택에 의해서 우위가 선정된다. 지역에 따른 교육 격차도 실질적으로 많이 줄어들었다. 오히려 학력은 자신의 노력을 대신 증명해 줄 수 있는 수단으로서 탁월했었다고 생각한다.

2.2. 학력 차별을 만드는 주체는 누구인가?


학력 기준을 사용하는 주체는 인력이 필요한 조직이다. 그런 조직의 대부분은 기업들이었고 지금도 대부분이 그러하다. 인원을 구하는 주체들이 학력을 선택의 기준으로 사용한 것이다. 학력이라는 기준을 통해서 어떤 사람의 정체성과 노력,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로써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학력을 노력과 능력을 판별하는 기준으로 사용하는 것을 막음으로써 새롭게 능력과 노력을 평가 하기 위한 기준을 인력을 필요로하는 주체들이 직접 만들고 있다. 이것이 학력 차별이 부당한 차별이며 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조장한 풍조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학력으로만 능력을 평가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어 객관적인 직업 능력 평가가 있었으면 하는 요구가 있긴 했다. 이로써 정부나 공기업에서 직업 능력을 종합적으로 평가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한 것 중 NCS라는 직업 역량 평가 시스템도 있다.



사기업들은 학력을 기준으로 사용하는 것이 부정적인 사회 분위기에 따라 새로운 판별 기준을 자체적으로 만들고 시험을 통해서 능력과 정체성, 노력을 판별해 간다. 자체 시험을 만들지 못하는 기업들은 여전히 학력을 차별 기준으로 사용한다. 지금까지 학력이라는 차별 기준은 그 지위를 시스템적으로 위협당했고 그 기능을 의심받고 있다.

흔히들 좌파라고 불리는 정치인들은 학력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 학력 차별의 신뢰성을 없애는 전략으로 학력 차별을 인원 판별 수단으로서 기능을 없애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에 대한 예는 이어서 적어본다.

2.3. 학력 제도의 변화에 따른 학력에 관한 불신①


학력 제도의 변화는 느리지만, 인원의 선발 기준이 되었던 학력에 관한 신뢰성에 변화를 주었고 천천히 사회에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과거 좌파라 불리는 자들의 교육 정책은 엘리트 교육을 배척하고 배움에는 차별을 두면 안 된다는 주장을 통해서 여러 교육 제도를 개편하였다. 과거에는 인터넷 강의 등으로 질 높은 강의를 들을 기회가 없었기에 교육의 수준이 지역과 학교에 따라서 천차만별이였고 환경 또한 학생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음에 이러한 주장은 교육의 기회는 평등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바른 판단 일 수 있었다.

다만 더 나아가 정치인들은 결과의 평등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서 혼란을 초래했다. 대학의 인원 선출 기준에서 흔히 정시 대학수학능력 시험으로 뽑는 인원과 수시라 불리는 시험 외의 능력 판별 기준으로 학생의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인원 선출 시스템의 비율을 조정함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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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라는 조직에서 눈 앞의 이익에 위해서 차체적으로 선도했는지는 의심이 있지만 기존에 수능 위주의 인원 선출 이외에 수시의 비중이 높아졌고 개인적으로는 수시의 평가 시스템이 학생 능력 평가에 대한 객관성을 의심 받게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물론 수시 시스템이 한 분야에 특출나게 뛰어난 인원을 뽑는데에 효과적인 방법임으로 수시의 좋은 점을 부정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 제도의 성과는 효과를 알아보기가 쉽지가 않다. 통계적으로 증명된 것이 아니니 확답할 수 없다. 이러한 불확실성이 정책이나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려운 점이라 할 수 있다. 앞선 내용은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확인해 보는 차원에서 접근한 것이다.

다시말해 입시제도의 변화는 인원의 능력과 노력을 평가하는데 학력을 쓰는 것에 관에서 불확실성을 줄 수 있었다는 점이였다 생각한다. 이는 수요자(조직)와 공급자(개인) 모두에게 불이익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2.4. 학력 인플레이션에 따른 학력에 관한 불신②


산업과 경제가 고도화 됨에 따라서 선진국이 겪는 문제는 과거에 비해서 학력 수준이 높아지는 문제이다. 이런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학력에 인플레이션이 생기는 것이다. 필요 이상의 학력을 지닌 인원이 많아지는 것이다. 다만 문제는 산업과 경제가 고도화 된 사회 문제 뿐만 아니라 지식의 수준이 문명의 발달에 따라서 같이 높아지기에 학력의 수준에 긴축정책이 필요해 보인다.

왜 긴축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겠다. 이는 서구의 100년 전 유명 대입 입학 시험의 난이도가 현재 고등학교 2학년이면 풀 수 있는 수준의 간단한 문제였던 자료를 보고 생각하게 되었다. 산업과 기술의 발달은 보다 높은 수준의 교육 수준이 필요하다. 학력 인플레이션은 인원의 사회 진출을 늦추게 되어서 현재 사회 문제의 초기를 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식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지금의 학력 시스템은 필자가 보기에 너무 늘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또한 지식의 습득이 정보화 시대를 맞아서 급속히 빨라졌기에 성인이라고 부를 수준의 지식을 얻는 시기도 앞당길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편으로는 순수했던 기간이 짧아지는 것에 안타까움이 있지만 이는 강제하기가 힘들며 환경에 의해서 거의 강요된다 싶어 보인다. 스마트폰을 통해서 지식을 습득하고 싶어하고 습득하는 어린이들을 어린이들은 순수해야 한다며 우리가 강제로 막는 것도 좋지 못한 방향으로 보인다.

학력 인플레이션은 과거에 초등 교육과 중등 교육만 받아도 고급인력으로 고려되던 사회를 대학교를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고급인력으로 취급이 어렵게 만들었다. 과거에 6.25 당시 중학교를 나온 작은 할아버지가 고급인력으로서 헌병으로서 군 생활을 하셨다는 점을 예로 들겠다. 다만 문제는 교육이 압축적으로 이뤄지는 게 현실성이 있느냐이다.

현재까지는 교육은 뇌의 발달과 신체의 발달도 고려를 해야 하기 때문에 교육의 인플레이션을 줄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과제일 수가 있다. 말하고 싶은 것은 학력 인플레이션으로 인해서 차별 기준으로서 학력의 매력이 떨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2.5. 없어진 학력 차별 다시 만들어진 취업 시험


그렇지만 과연 학력 기준에 의한 차별이 부당한 차별이라 치부하고 이를 없애게 된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기업이나 조직이 능력과 재능을 무엇으로 손쉽게 판단할 수 있을까? 결국은 이는 또 다른 시험으로 대체된다. 교육에서 행했던 시험을 통해 각 학교가 평등하게 학생을 받아들리게 했던 고등교육의 교육 평준화를 사회의 회사에 적용하여 회사 평준화를 하겠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회주의 정치인들 추진했던 교육정책은 인원의 능력 평가의 시기를 뒤로 미룬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 중학생들이 치렀던 명문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없애게 함으로써 이를 대학입시로 능력과 노력 평가를 뒤로 미뤘고 최근에는 대학입학시험이 능력 판별 기능을 무력화 시킴으로서 조직들은 능력 판단을 위해서 자체 시험을 만들어 지원자의 능력을 판별하는 기준을 만들어 내었다.



이는 과거에 학력 제도가 잘 정립되지 않았던 과거의 취업 시스템으로 회기한 것이다. 믿지 모르겠지만 필자의 기억으로는 과거에도 회사 인원을 뽑기 위해서 대학 입시 처럼 설계 문제를 푸는 식으로 입사 시험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과거로 회귀한 것이 발달한 인원 선별 시스템인지 조금은 의구심이 들 뿐이다.

그럼에도 필자는 과거의 방법으로 회귀한게 퇴보뿐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환경에 맞춘 사회가 제일 효과적인 방법을 채택한 것이 과거의 방법일 수도 있는 것이다. 과거의 방법을 완전히 똑같이 답습하는 것도 아니다. 인터넷으로 과거와는 다르게 광범위하고 면밀히 많은 인원 중에서 제일 적합한 인원을 찾아낼 수있는 기술이 생겼기에 과거와는 다르다고도 할 수 있다. 물론 회사 각각이 비용을 치루는 면에서 비효율적인 면이 있다.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얻기 위해 얼마나 사회를 시기마다 비효율적으로 만드는지 예시가 되리라 본다. 결과적으로 보기에 사회주의자 정치인들은 표를 얻기 위해서 학력 차별로 고통 받는 이들을 이용했다고 보인다. 지금의 사회주의 정치인들의 표는 경제가 나쁘고 자유가 상실될수록 얻기가 쉽다는게 답답할 노릇이다.

근시안적인 도덕과 연민으로 표을 얻으려는 사회주의 정치인들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더 멀리보는 국민들이 많아야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낙오하고 실패한 이들을 공감하고 사회적으로 기회가 있음을 설득하고 기회를 부여해줘야 함은 맞으나 이를 가지고 반대 진영을 공격하는 행위는 옳아 보이지 않는다. 이를 구분하는 시야를 가지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2.6. 학력 차별이 대두되는 이유


학력을 기준으로 능력과 노력을 평가 하는 행위가 부적절하다는 것은 학력에 쏟아야 하는 시간과 돈에 비해서 그 기간에 현장에서 일하면서 경험을 쌓았던 인원의 능력과 노력도 뒤쳐지지 않았다는 점을 주장한다. 이는 기업내에서 충분한 실력이 있음에도 승진에 있어서 학력을 차별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기업 내에서 같은 학력임에도 학교 간의 서열을 통해서 차별을 행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회사에 근무하면서는 학위를 얻기가 쉽지 않으며 학위를 따는 동안에 휴직을 할 수 있는 회사는 존재하기 힘들기에 승진 차별을 극복하는 기회조차 얻기 힘들다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회사가 언제까지 경쟁력을 가질지 의문인 부분도 있다.

회사 내에서 승진 평가를 학력과 학교 서열로 정하는 것은 부당한 차별이 될 가능성이 농후에 보인다. 조직 내에서의 업무 능력 평가를 분명히 기록하고 있으면서도 이에 관하여 평가하는 것이 아닌 그룹에 속하지 않았던 앞선 시기의 기록을 통해서 인원을 평가한다는 점은 오히려 경쟁력을 갈아 먹을 수 있는 위험이 있을 것이다.



물론 회사 내 평가에서 같은 역량이면 과거의 기록까지 비교하는 게 좀 더 확률적으로 이롭긴 하겠지만 말이다. 아무리 통제를 좋아하는 사회주의자라고 해도 회사 내 제도까지 간섭하는 것은 현재 정의로는 지나치다고 보인다.

경력자에 관한 평가나 경력에 관한 능력 평가가 쉽지 않은 점에서 적절한 기준을 찾지 못해서 학력을 보게 되는 것도 학력 차별이 대두되는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다만 경력자에 관한 평가를 위해서 흔히들 스펙이라는 자격증 등으로 이를 간접적으로 증명할 수도 있지 않나 생각된다. 경력자에 대한 적절한 평가가 부족하기에 학력에 대한 평가가 들어가서 이로 인한 영향이 학력 차별을 대두시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나마 학력 차별에 관해서는 최근에는 많이 대두되지 않는 사항으로 보이지만 이전 글 [생각] 당신(진보)의 미래가 있기에 ‘차별’은 불멸한다.에서 차별에 관해서 말했을 때 처럼 차별 문제가 대두되는 이유는 기회의 부족, 성장의 지체, 대체할 수 있는 꿈의 부족 등 사회가 퇴보하고 있을 때 많은 영역에서 문제로 인식되며 논의된다. 학력 차별 문제도 그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는 주제는 아니라고 본다.

3. 학력 차별에 관한 생각 마무리


필자는 이미 이전에 차별에 관한 글을 썼을 때 차별은 결국 선택 받지 못하고 소외된 이들이 스스로가 기회가 없고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고 느끼게 될 때 부당한 차별이라고 느끼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잘나신 정치인들에게 학력을 차별 기준으로 삼도록 제도를 남겨 놓을지 아닐지를 반문해야 한다. 차별 기준으로 남겨 놓는 게 좋다고 답변한다면 우리는 이 제도를 신뢰성 있고 차별성 있는 제도로 가꾸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필자의 현 실태로 보아서는 학력에 의한 기준은 여전히 존재하게 되며 학력 의외의 차별 기준 흔히 스펙이라는 기준을 요구하는 것도 이어질 것이라 보인다.



베이비붐 세대 자녀들은 인구 구성답게 입시경쟁, 취업 경쟁, 주택취득 경쟁 등 무능력한 정치인들에 의해서 고통이 끝이 없는 것 같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일 건설적인 해결책은 경제력을 주는 것이다. 물론 돈이라는 물고기만을 주는게 아니라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물고기를 잡는 법을 알려주는 식으로 힘을 지닐 수 있는 교육이 제일 건설적인 방법일 것이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가 서로 다른 방법을 지니고 있지만 어찌되었든 결국은 더욱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되는 것이 최종 목표이자 지속적인 목표 아니겠는가? 입시에 매달리고 취업에 매달리고 주택 구입 문제에 열을 내는 것은 많은 이들의 의지이다. 사회는 그들의 수요에 적절한 공급(기회, 교육)을 꾸준히 해주는 것이 사회의 혼란을 막는 길일 것이다.

요번 글은 학력 차별이 부당함만 만들지 않았다는 것을 언급하고 싶었다. 그에 대한 답은 2.1.에서 간단한 답이 나왔지만 추가적으로 학력과 관련된 이야기도 했다. 이전 글을 읽었다면 학력 차별 문제에 관해서 독자도 필자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부분은 있었을 것이다. 저번에 논의했던 선택이 차별을 만든다는 논의에서 이야기 했던 것과 같이 사회적 차별 기준 중 학력이라는 소재에 관한 생각을 작성해 보았다. 당신의 생각 발전에 도움이 되었길 바라면서 이만 글을 마친다. 당신의 앞길에 행운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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