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의 반대가 자본주의? 자본주의에 대한 얕은 생각

[깊은생각 & AI와 대화] 공산주의의 반대가 자본주의? 자본주의에 대한 얕은 생각



1. 개요


공산주의의 반대는 자본주의인가?

흔히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서로 대립하는 경제체제로 설명한다. 정치적인 이념을 이야기할 때도 두 개념을 마치 서로 반대편에 위치한 것처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이 구분에 조금 의문이 있다.

애초에 자본주의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자본주의는 누군가가 이론을 만들면서 등장한 경제체제일까?

경제학이 발전하고 자본주의라는 개념이 체계적으로 연구되기 훨씬 이전에도 사람들은 재산을 소유했고, 그 재산을 이용해 새로운 재산을 만들었으며, 서로 물건을 교환하고 이익을 추구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라는 명칭이 만들어지기 이전에도 그 근간은 이미 존재했던 것이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자본주의라는 것이 인간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경제활동에 이름을 붙인 것에 가깝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물론 경제학에서 정의하는 자본주의는 그보다 복잡한 개념이다.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시장경제, 자본의 축적과 임금노동 등 여러 조건을 함께 고려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한 학문적인 정의에서 출발하기보다, 인간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욕망에서부터 생각해 보고 싶었다.

그것이 바로 사유재산에 대한 욕망이다.

2. 본문


2.1. 자본주의는 인간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것이 아닐까?


사람은 무언가를 소유하고 싶어 한다.

자신이 사용하는 물건을 소유하고,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것을 보관하고, 가능하다면 더 많은 재산을 형성하고 싶어 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같은 수준의 소유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소유에 대한 욕망이 인간 사회에서 널리 나타나는 행동이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리고 사유재산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 재산을 이용해 또 다른 재산을 만들려는 행동 역시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대의 농부를 생각해 보자.

농부는 자신이 소유한 농기구를 이용해 농사를 짓고, 수확한 농산물 가운데 일부를 다른 물건과 교환할 수 있다. 여유가 생긴다면 더 좋은 농기구를 구매하거나 더 많은 생산을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밭에서 호미로 일하는 사람

이 과정에서 기존의 재산은 새로운 재산을 만들어 내는 수단이 된다.

이것은 현대적인 기업이나 주식시장, 거대한 공장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행동을 자본주의적인 성격을 가진 경제활동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고대의 농업사회를 현대적인 의미의 자본주의 사회라고 부르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소유와 교환이 존재한다고 해서 사회 전체의 경제체제가 자본주의였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은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의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그러한 체제를 가능하게 만든 근본적인 행동은 이미 인간 사회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인간에게 사유재산을 소유하고 활용하려는 욕망이 존재하기 때문에, 다양한 경제제도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것이 이번 생각의 출발점이다.

2.2. 사유재산의 핵심은 소유에만 있는 것일까?


사유재산을 이야기하면 흔히 무언가를 개인이 소유할 수 있다는 권리를 떠올린다.

그런데 나는 사유재산에 자신이 소유한 것을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물건을 가지고 있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재산을 축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농기구를 가지고 있다면 농사를 지을 수 있고, 소유한 도구를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고 대가를 받을 수도 있다.

자신의 재산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는 소유권과 밀접하게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반면 노동을 고용하는 문제는 조금 다르게 보고 싶다.

노동은 개인과 개인 사이의 계약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제활동이다. 재산을 소유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의 노동까지 당연하게 소유할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번 생각에서는 노동관계 자체보다 개인의 재산을 소유하고 활용할 권리에 집중하려고 한다.

물론 여기에서부터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발생한다.

사유재산이라는 권리가 어디까지 인정되어야 하는지, 재산을 활용해 발생한 이익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개인의 경제활동을 사회가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이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은 자연스럽게 공산주의에 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2.3. 생산수단과 개인 재산은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을까?


공산주의, 특히 마르크스주의에서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이다.

이론적으로는 개인이 생활을 위해 사용하는 물건과 다른 사람의 노동을 통해 자본을 축적하는 생산수단의 소유를 구분한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 구분이 실제 인간의 경제활동에 적용될 때 얼마나 명확할 수 있는지 의문이 생겼다.

다시 농기구 하나를 생각해 보자.

어떤 사람이 농기구를 하나 가지고 있다. 이 농기구로 자신의 생활에 필요한 식량을 생산한다면 개인적인 생활도구라고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같은 농기구를 이용해 생산한 농산물을 판매한다면 어떨까?

또 자신이 사용하지 않는 날에 농기구를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고 사용료를 받는다면?

농기구의 개수는 여전히 하나다.


손에 들린 농기구 하나

물건 자체가 변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농기구는 이미 새로운 재산을 만들어 내는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개인의 생활을 위해 인정한 사유재산이 언제든 소득을 만들어 내는 생산수단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농기구가 아니라 일상에서 사용하는 컴퓨터나 주택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사용하면 생활용품이지만, 이를 이용해 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공간을 임대해 수익을 얻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개인의 재산이고 어디서부터 제한해야 하는 생산수단일까?

물론 마르크스주의에서 말하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는 단순히 물건을 이용해 대가를 받는 행위와 동일하지 않다. 생산수단의 소유가 다른 사람의 노동 및 사회적 관계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중요하게 다루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의문을 가지는 부분은 그러한 구분을 실제 제도로 구현할 때의 문제이다.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를 제한하려면 어느 지점에서 개인의 정당한 경제활동과 제한해야 할 경제활동을 구분해야 할까?

그리고 그 기준은 누가 정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인간의 경제활동이 본래 연속적인데, 이를 제도적으로 명확하게 나누려는 시도 자체에 어려움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공산주의를 표방한 사회에서도 개인의 생활용품이나 제한적인 개인 경제활동을 인정한 사례가 있었다.

그렇다면 개인 소유의 예외를 인정한다는 사실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예외로 인정한 재산마저 새로운 재산을 형성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공산주의 이론 전체가 잘못되었다는 결론이라기보다, 인간의 소유와 생산활동을 구분하고 통제하는 제도에는 복잡한 문제가 따른다는 나의 생각이다.

2.4. 공산주의의 반대가 정말 자본주의일까?


여기에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게 된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는 흔히 서로 반대되는 경제체제로 설명된다.

학문적으로 보면 두 체제는 생산수단의 소유와 생산관계를 바라보는 방식에서 중요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를 단순하게 양쪽 끝에 있는 개념으로만 생각하기 어렵다.

자본주의를 사유재산과 경제활동의 자유를 중시하는 체제로 본다면, 공산주의는 주요 생산수단과 생산 성과를 사회적으로 소유하고 관리하려는 방향을 가진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차이를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극단적인 세금의 비유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자본주의가 개인의 경제적 성과를 가능한 한 개인에게 귀속시키는 방향이라면, 공산주의는 그 성과를 사회에 귀속시키려는 방향이라는 것이다.

이를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공산주의는 세금을 100%로 가져가는 것과 비슷하다는 비유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실제 세율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생산수단과 생산 성과의 최종적인 귀속이 개인에게 있는가, 사회에 있는가를 설명하기 위한 비유이다.

또한 공산주의에서 개인이 사용하는 모든 소비재와 소득까지 반드시 전부 사회에 귀속되는 것은 아니므로 정확한 학문적 정의로 사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개인의 재산과 경제적 성과를 누구의 것으로 인정할 것인가라는 차이를 직관적으로 설명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러한 관점으로 현대 사회를 바라보면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현대의 자본주의 국가들은 사유재산을 인정하면서도 상당한 수준의 세금을 부과하고,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기업과 개인의 경제활동을 규제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실의 자본주의는 이미 일정한 사회적 통제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찌 보면 공산주의가 중요하게 다루었던 사회적 관리와 공동의 이익이라는 문제를 현대 자본주의 역시 외면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두 체제가 같아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경제체제를 현실에서 운영할 때는 사유재산을 보장하는 것과 사회적 필요에 따라 이를 조정하는 일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다.

2.5.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현대에도 유효할까?


자본주의를 생각하다 보니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떠올랐다.

흔히 보이지 않는 손과 자유방임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되는 인물이다.

하지만 애덤 스미스가 정부의 모든 개입을 부정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국방과 사법제도, 공공시설과 교육 등에 대한 국가의 역할도 인정했다.

그럼에도 일반적으로 자본주의를 설명할 때는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활동과 시장의 조정 기능이 강조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현대 사회는 어떨까?

오늘날 경제는 순수하게 개인의 자유로운 거래에만 맡겨져 있지 않다.

국가는 세금을 통해 자원을 재분배하고, 독점을 규제하며, 노동과 환경에 관한 기준을 정한다. 공공성이 강한 분야에서는 직접 시설을 소유하거나 민간기업의 운영을 규제하기도 한다.

전기, 수도, 교통 인프라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수력 발전 관로와 송전선

이러한 시설은 개인이나 기업이 소유하고 운영할 수 있는 경제적 자산이지만, 동시에 사회 전체의 생활과 경제활동을 떠받치는 기반시설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특정 지역의 수도관망을 한 기업이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있다면 주민들이 다른 공급자를 선택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고 경쟁을 위해 같은 지역에 수도관망을 여러 개 설치하는 것이 반드시 효율적인 것도 아니다.

이러한 분야에서는 사유재산의 소유권을 인정하더라도 요금과 공급 조건을 규제하거나, 아예 공공기관이 시설을 운영하는 방식이 사용될 수 있다.

결국 현대의 자본주의는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동시에 그 행사를 일정하게 제한하는 경제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생각하면 자본주의의 본질이 단순히 모든 규제를 없애는 데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오히려 개인의 경제활동을 기본적으로 인정하면서 사회적 필요에 따라 이를 조정하는 것이 현실의 모습에 가깝지 않을까?

2.6. 경제적 자유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사유재산의 제한을 이야기하다 보면 경제적 자유라는 개념을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경제적 자유라는 것은 무엇일까?

누군가가 재산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그것을 소유할 수 없게 되었다면, 나의 경제적 자유가 침해된 것일까?

나는 이 문제를 간단하게 판단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정당하게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의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반면 어떤 재산이 사회 전체의 필수적인 경제활동을 좌우하는 수단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전기와 수도, 도로 같은 시설을 생각해 보자.

이러한 시설에 접근할 수 없다면 다른 경제활동을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개인의 소유권과 사회의 경제적 자유가 충돌하는 문제가 나타난다.

개인적으로는 경제적 자유를 이야기할 때 재산을 소유하고 활용할 자유와, 사회 구성원이 실제로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러한 구분이 사유재산의 제한을 무조건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는 어떤 경우에 개인의 재산권을 제한할 수 있을까?

내 생각에는 사회의 안정성과 발전 정도, 구성원들의 교육 수준과 제도적인 성숙도 등에 따라 필요한 규제의 방식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국가마다 공공시설의 소유와 운영 방식, 경제에 대한 규제의 정도도 다르게 나타난다.

이는 경제체제를 하나의 완성된 형태로 고정하기보다 현실적인 상황에 따라 조정해 왔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 있다.

사유재산의 보장을 기본으로 하고, 이를 제한하려는 쪽에서 충분한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2.7. 사유재산은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을까?


사유재산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상황에서 소유권이 절대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의 발전을 위해 도로와 철도를 건설하거나, 공공시설을 확충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재산권을 제한해야 하는 상황은 발생할 수 있다.


위쪽 도로와 아래쪽 철로

그런데 이러한 제한은 사회 발전을 더디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토지의 소유권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재산을 지키려고 할 것이고, 공공사업을 추진하는 쪽에서는 그 토지를 확보하려 할 것이다.

여기에 민주적인 의사결정과 정치적인 이해관계까지 개입하면서 사업이 지연되거나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때로는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모습도 보인다.

물론 반대하는 사람이 언제나 이기적인 것은 아니다. 부당한 공공사업을 막거나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일도 민주적 절차에서 중요한 기능을 한다.

그럼에도 개인의 이익과 사회 전체의 이익이 충돌할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 현대 사회는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협의와 설득, 보상이라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개인의 재산을 공공의 목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면 정당한 근거를 제시하고, 필요한 절차를 거치며,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 과정이 느리고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의 사유재산을 사회적 필요라는 이유만으로 쉽게 침해할 수 있도록 한다면, 그 또한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공공의 이익이라는 말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고, 그 판단에는 정치적인 의도가 개입될 가능성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절차가 단순한 비효율이 아니라 사회가 지켜야 할 규칙이라고 생각한다.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 개인의 재산권을 제한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필요성을 입증하고 정당한 절차를 거치는 책임은 제한을 요구하는 쪽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한 범위에서는 개인의 소유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을 기본적인 지향점으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공공의 이익을 부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 필요와 개인의 권리가 충돌할 때 어느 한쪽을 지나치게 쉽게 희생시키지 않기 위한 원칙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3. 마무리


처음에는 단순한 의문이었다.

공산주의의 반대가 정말 자본주의일까?

그리고 자본주의라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 낸 경제제도일까, 아니면 인간의 본래적인 행동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자본주의의 근간을 사유재산에서 찾고 싶었다.

인간은 무언가를 소유하고 싶어 하고, 자신이 소유한 재산을 활용해 새로운 재산을 만들고자 한다.

이러한 욕망과 행동은 자본주의라는 명칭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존재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인간의 경제활동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제도라기보다, 인간에게 자연스럽게 존재하던 행동을 사회적인 체계로 발전시킨 결과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사유재산과 재산 축적이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현대적인 자본주의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이 부분은 경제학적으로 더 공부해 볼 필요가 있다.

공산주의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제한하려는 이유와 이론적인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지만, 개인의 생활도구조차 생산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경계를 어디까지 설정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그렇다고 현대 자본주의가 모든 사유재산을 무제한으로 인정하는 것도 아니다.

사회는 이미 다양한 규제와 공공 소유, 세금과 재분배를 통해 개인의 경제활동을 조정하고 있다.

결국 경제체제라는 것은 단순히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름만으로 현실을 완전히 설명하기 어려운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이어가면서 내가 중요하게 판단한 것은 사유재산의 보장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물론 공공의 필요에 따라 제한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필요성을 충분히 설명하고 정당한 절차를 거치는 것이 중요하다.

자본주의의 자연발생적인 성격을 이야기하면서도 현대 사회에서 그 권리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어쩌면 이러한 고민 자체가 현대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과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제대로 읽어 보면 지금과는 또 다른 생각이 생길지도 모른다.

다만 지금의 나에게 자본주의는 단순히 하나의 경제학적 명칭에 머무르지 않는다.

인간이 자신의 것을 소유하고, 그것을 활용해 더 나은 삶을 추구하려는 욕망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자본주의에 대한 얕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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